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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벽우 김영래 Feb 21. 2019

외로운 웃음

아내의 바느질 에피소드

  남편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외로워서 그랬을까. 아침 9시에 퇴근하는 남편의 퇴근 시간이 다른 때 보다 길게 느껴졌다. 어제는 빨리 얘기가 하고 싶어서 잠도 오지 않았다. 나의 이 엉뚱하고 어이없는 얘기를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하니 또 웃음이 나왔다. 어젯밤 불속에 들어가면서도 낄낄거리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머리를 쥐어박으며 스스로 미쳤어. 미쳤어하고 되뇌었었다. 아마도 누군가 보고 있었다면 진짜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웃음보가 터져서 슬픈 영화를 봐도 웃음이 진정되지 않을 것 같았다. 잠시 후 좀 진정되는 듯하더니 혼자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외로워졌다. 내 실수이기는 하지만 재미난 일인데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앞에 없다는 사실 때문인 듯했다. 남편이 야간근무가 아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어찌 생각하면 이런 일쯤은 하나도 웃기지 않은 일인데 웃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니 슬퍼지기까지 했다.

  불을 끄고 TV를 보다 잠들려고 누웠는데 평소에 재미나던 프로들도 오늘따라 시시껄렁한 게 재미가 없었다. 이불을 따로 덮고 자더라도 옆에서 남편이 숨 쉬고 있는 소리만 들어도 따뜻했는데 오늘따라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수록 더 외로운 법인가 보다. 외로움이란 놈은 혼자 있을 때도 찾아오고, 군중들 속에서도 불쑥 나타나고, 심지어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찾아온다. 외로움이 깊어지면 마치 좁다란 우물 안에서 동그랗고 작은 하늘만 보이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되어 우울증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외로움이 우울증이 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고 평상시처럼 편한 체육복으로 갈아 입고 잠시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았다. 손으로 겉 옷을 정비하면서 허리춤을 쓱 만졌는데 할머니 피부같이 헐렁하게 늘어진 고무줄이 탄력도 없이 느슨하게 허리를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붙잡고 있다기보다 매달려 있다는 표현이 맞는 듯했다.    

  “너무 오래 입었나?” 

  수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본체만체하며 귀차니즘으로 그냥 입었을 테지만 외로움 탓인지 뜬금없이 바느질이 하고 싶어 졌다. 여고시절 가사 시간에 뜨문뜨문했고, 애들 키우면서 가끔 했지만 손끝이 단단해서 남편으로부터 꽤 잘한다는 칭찬을 듣곤 했다. 아들이 입던 옷인데 군에 입대한 지 벌써 서너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들 젖내가 났다. 체육복으로 얼굴을 덮고 크게 심호흡을 했더니 아들 냄새가 몸속으로 깊게 스며 들어왔다. 보고 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 

  “추울 텐데. 낯선 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 

  안방 드레스룸 화장대 밑에 있는 반짇고리를 들고 다시 소파로 나왔다. 살짝 추위가 느껴져 빨리 꿰매고 침대로 갈 생각을 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어항의 구피들이 피곤한 듯 몸놀림이 느렸다. 이놈들은 오로지 나의 먹이 주는 손만 기억하는데 어항 앞에서 손이 왔다 갔다 해도 시큰둥했다. 졸음이 더 급한 모양이었다. 

  “니들도 지금은 잠이 오는 모양이구나. 이것만 빨리 고치고 불 꺼줄게.  조금만 기다려라 얘들아!”

  혼잣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이런 습관은 아들, 딸이 다 도시로 떠나고 남편도 야간근무 나간 뒤 혼자 있으면서 생겨난 것들이었다. 

  옷핀으로 고무줄을 묶어 굼벵이 걸음처럼 울렁울렁 허리춤을 타고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에 얼굴을 빼꼼 내미는 옷핀의 쇠를 잡고 고무줄을 당겼다. 그런데 그때 아차 실수를 했다. 고무줄 꼬랑지를 잡지 않고 머리만 당겼더니 꼬리가 그만 허리춤에서 반 뼘쯤 달려 들어가 버렸다. 좁은 틈으로 손을 넣어 보려고 했더니 어림없었다. 핀을 넣어 꼬리를 잡아당겨내려고 했다. 간신히 옷을 접어가며 허리춤을 파고들어 간신히 꼬리를 잡아서 슬쩍 당기며,   

  “어휴” 

  다행이다 싶어 가볍게 한 숨을 쉬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이없게도 머리가 딸려 들어갔다. 손으로 잡지도 않고 머리를 당겼으니 당연히 딸려 온 만큼 들어갈 수밖에. 처음엔 그냥 입가에 미소만 지었다. 허허롭게 웃음도 나왔다. 그러다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괜히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매듭이 묶인 부분을 잡고 고무줄을 당겨 다시 다 빼냈다. 처음부터 다시 할 생각이었다. 잠시 손을 놓고 안경 너머로 어항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구피들은 나른한 유영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끝부분에 매듭을 먼저 만들어 구멍 속으로 달려들어 가지 않도록 했다. 그것도 안심이 안돼서 고무줄 구멍으로 옷핀을 넣으면서 매듭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잠깐 사이 손을 재빨리 움직여 핀이 달린 머리 쪽을 빼냈고, 손쉽게 둘을 묶었다. 바지춤이 팽팽한 긴장감이 주름으로 만들어져 새것처럼 되살아 났다. 

  아까의 실수가 꼬리에 먹이를 달고 계속 뱅뱅도는 강아지 모습이 떠올라 방으로 향하면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별일 아닌데 잠깐잠깐씩 그 생각이 떠오르면서 웃음보가 터졌다. 

  “별 싱겁기는 너 외롭지?”

  내가 혼잣말을 해 놓고 다시 웃음이 터졌다. 멈추지가 않았고, 누가 보고 있는 건 아닌지 거실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고, 희미한 형광등 불빛만이 쓸쓸하고 내리고 있었다. 남편이 있었더라면 바보같이 혼자 헤매고 뭐가 그리 우습냐고 머리를 쥐어박았을 것이다.  


  이불속으로 들어가면서도 두서너 번은 웃었다. 재미도 없는 tv를 켜 놓고 보다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었고, 꿈도 꾸지 않았다. tv는 밤새  혼자 떠들었다. 

  커튼 틈새로 햇살이 들어왔다. 핸드폰으로 시계를 보니 8시가 지났다. 그래도 이불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 새우처럼 웅크려서 허리를 좀 편 다음 핸드폰을 들고 뉴스를 뒤적거렸다. 카톡에 벌써 부지런한 딸이 안부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숫자 1이 남아 았었다. 남편은 벌써 읽었을 테고, 아들은 아직 핸드폰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어제는 남편이 오면 열 일 제쳐두고 내가 저지른 실수를 얘기하려고 대강의 스토리까지 준비를 했었는데 아침이 되니 괜히 싱거운 생각이 들었다. 싱겁다고 핀잔만 들을지 몰라 맘을 고쳐 먹었다. 

  9시 15분쯤이 되자 현관에서 “열렸습니다”하는 음성이 들렸다. 갑자기 혼자 웃음이 입가에 번졌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했다. 남편이 안방으로 재근 재근 얼어오고 있으리라.  남편이 거의 들어왔다 싶을 때쯤 얼굴을 뾰족 내밀며,  

  “자기야 어제 나 바느질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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