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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벽우 김영래 Feb 10. 2019

간절함

온몸의 간절함을 담아 뻗은 손에 잡고 싶은 것

  간절함 뒤에 오는 단어를 생각해 본다. 욕심이거나 욕망이다. 욕심이라고 하면 좀 나쁜 의미 뉘앙스를 풍기려나. 욕망은 어떤가. 욕망도 썩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네. 바람이 좋겠다. 희망이니까.   


  우연히 청주에 갈 일이 있었다. 볼일이 끝나고 멀리서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유명 카페에 앉아서 되지도 않는 그림을 그리고 수다도 떨며 두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거라 했는데 겨우 한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진력이 났다. 오랜만에 멀리 온 외출이라 일찍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 내일, 일요일 하루가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 큰 위안이 되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유로움이란 이런 것인가. 하지만 이 시간도 눈 녹듯 시나브로 없어질 테지만 지금 생각해낸 시간 속에서는 아직 내일이 살아 있으니까. 


  겨우 한 시간을 보냈는데도 하루처럼 긴 시간을 어디서 또 가져올 수 있을까 고민하다. 바람 부는 벽화마을 길을 좀 걸어 보기로 했다. 짐을 챙겨 카페를 나왔더니 안의 따사로움과는 정반대로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겨우 한 골목을 걷고 차로 바로 돌아왔다. 

  공간에 의존하고 위안받는데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 차 안은 다시 포근함과 함께 밖의 냉기를 금방 잊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났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옛 건물 부지에 국립미술관이 생겼다는 것을 얼마 전 지나치면서 본 뉴스가 도움이 됐다. 미술관을 생각해낸 것은 신의 한 수로 여겨졌다.   

  아직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현장을 지나 임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장했다. 다섯 시까지만 입장권을 살 수 있다는 안내 메시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세 시 반이 좀 넘었으니 부족하지는 않을 듯했지만 좀 더 일찍 생각해서 카페에서 죽치고 있던 시간을 줄일 걸 하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정식 개관이 아니라 무료입장이었다. 

  세상에 우연한 우연은 없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오늘 청주에 오면서 이미 이곳에 올 필연이 있었고, 얼마 전 뉴스도 오늘을 위해서 들었던 것이다.  

  총 5층인데 1층과 3,4층의 전시 작품을 차례로 관람했고,  5층에는 특별기획전이 있었다. 1층엔 주로 조각품이 전시되었고,  3층엔 그림과 소품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지만  4층엔 '눈으로 보는 수장고'로 유리 밖에서 잠깐 만날 수 있었다.  5층엔 비디오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지만 아직 정식 개관이 아닌 탓에 어수선하고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었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은 처음 대한 1층에 있었다.   

청주 국립현대미술관 1층에 전시된 '미스터 리 ' 작품.  

 ‘미스터 리’라는 작품이었다. 작가 이름을 기억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영화나 책을 보면서 감독이나 작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쁜 습관 탓도 있었다. 앞으로는 그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라도 이름을 더 성실히 기억하도록 해야겠다. 5층까지 올라가는 내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이 작품이었다. 

  쇠로 된 ‘미스터 리’는 아주 날씬한  남성이 뒷발을 높이 쳐들고 앞 발은 앞 꿈치로 딛고 선 채 손을 자기 몸보다 한 2미터는 앞으로 뻗어 뭔가를 잡으려고 하는 모션을 취하고 있었다. 얼마나 간절한지 팔을 길게 늘어 표현했고, 모든 신체구조에서 손이 제일 컸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잡을 수 있을 만큼 비율적으로 크게. 두 팔에 묻힌 얼굴은 작았고, 곱슬머리에 오만상을 찌푸린 듯했지만 간절함이 절절하게 묻어났다. 


  무엇이 이토록 간절할까? 작가는 뭘 이토록 애절하게 잡고 싶었던 걸까. 난 이처럼 간절하게 잡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 앞으로도 있을까?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나를 사로잡은 간절함. 다른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1층을 두 번이나 둘러보면서도 ‘미스터 리’ 생각밖에 없었다. 


  나의 간절함을 오늘도 생각한다. 

  아마 내일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한 발로 땅을 딛고 온통 간절함으로 뻗은 그 손에 움켜쥘 수 있는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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