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의 간절함을 담아 뻗은 손에 잡고 싶은 것
간절함 뒤에 오는 단어를 생각해 본다. 욕심이거나 욕망이다. 욕심이라고 하면 좀 나쁜 의미 뉘앙스를 풍기려나. 욕망은 어떤가. 욕망도 썩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네. 바람이 좋겠다. 희망이니까.
우연히 청주에 갈 일이 있었다. 볼일이 끝나고 멀리서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유명 카페에 앉아서 되지도 않는 그림을 그리고 수다도 떨며 두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거라 했는데 겨우 한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진력이 났다. 오랜만에 멀리 온 외출이라 일찍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 내일, 일요일 하루가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 큰 위안이 되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유로움이란 이런 것인가. 하지만 이 시간도 눈 녹듯 시나브로 없어질 테지만 지금 생각해낸 시간 속에서는 아직 내일이 살아 있으니까.
겨우 한 시간을 보냈는데도 하루처럼 긴 시간을 어디서 또 가져올 수 있을까 고민하다. 바람 부는 벽화마을 길을 좀 걸어 보기로 했다. 짐을 챙겨 카페를 나왔더니 안의 따사로움과는 정반대로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겨우 한 골목을 걷고 차로 바로 돌아왔다.
공간에 의존하고 위안받는데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 차 안은 다시 포근함과 함께 밖의 냉기를 금방 잊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났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옛 건물 부지에 국립미술관이 생겼다는 것을 얼마 전 지나치면서 본 뉴스가 도움이 됐다. 미술관을 생각해낸 것은 신의 한 수로 여겨졌다.
아직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현장을 지나 임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장했다. 다섯 시까지만 입장권을 살 수 있다는 안내 메시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세 시 반이 좀 넘었으니 부족하지는 않을 듯했지만 좀 더 일찍 생각해서 카페에서 죽치고 있던 시간을 줄일 걸 하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정식 개관이 아니라 무료입장이었다.
세상에 우연한 우연은 없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오늘 청주에 오면서 이미 이곳에 올 필연이 있었고, 얼마 전 뉴스도 오늘을 위해서 들었던 것이다.
총 5층인데 1층과 3,4층의 전시 작품을 차례로 관람했고, 5층에는 특별기획전이 있었다. 1층엔 주로 조각품이 전시되었고, 3층엔 그림과 소품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지만 4층엔 '눈으로 보는 수장고'로 유리 밖에서 잠깐 만날 수 있었다. 5층엔 비디오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지만 아직 정식 개관이 아닌 탓에 어수선하고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었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은 처음 대한 1층에 있었다.
‘미스터 리’라는 작품이었다. 작가 이름을 기억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영화나 책을 보면서 감독이나 작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쁜 습관 탓도 있었다. 앞으로는 그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라도 이름을 더 성실히 기억하도록 해야겠다. 5층까지 올라가는 내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이 작품이었다.
쇠로 된 ‘미스터 리’는 아주 날씬한 남성이 뒷발을 높이 쳐들고 앞 발은 앞 꿈치로 딛고 선 채 손을 자기 몸보다 한 2미터는 앞으로 뻗어 뭔가를 잡으려고 하는 모션을 취하고 있었다. 얼마나 간절한지 팔을 길게 늘어 표현했고, 모든 신체구조에서 손이 제일 컸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잡을 수 있을 만큼 비율적으로 크게. 두 팔에 묻힌 얼굴은 작았고, 곱슬머리에 오만상을 찌푸린 듯했지만 간절함이 절절하게 묻어났다.
무엇이 이토록 간절할까? 작가는 뭘 이토록 애절하게 잡고 싶었던 걸까. 난 이처럼 간절하게 잡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 앞으로도 있을까?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나를 사로잡은 간절함. 다른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1층을 두 번이나 둘러보면서도 ‘미스터 리’ 생각밖에 없었다.
나의 간절함을 오늘도 생각한다.
아마 내일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한 발로 땅을 딛고 온통 간절함으로 뻗은 그 손에 움켜쥘 수 있는 무엇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