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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벽우 김영래 Feb 08. 2019

아들에게 들려주던 자장가

- 커어다란 무 이야기

  아들이 대여섯 살 때쯤 잠자리에서 나름대로 각색을 한 동화를 들려주며 잠을 재웠다.

  누가 쓴 동화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와 아들은 시계추처럼 똑같이 반복되는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중독처럼 빠져들었고, 아들은 잠들기 위해서, 나는 아들을 재우기 위한 각자의 목적에 맞는 성과를 손쉽게 가져왔던 것 같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했다.   

  옛날 여우들이 사는 마을에 무를 하나 심었는데 여름이 지나고 수확을 할 때쯤엔 너무너무 커서 혼자서는 뽑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여우가 주변의 동물들과 힘을 합쳐 무를 뽑아 맛있게 나눠 먹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이야기를 언제든 5분에서 30분 이상까지 자유로이 분량을 늘릴 수 있게 내가 각색을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과 만화 캐릭터뿐만 아니라 로봇이나 영화 주인공들까지 호출해서 등장시킬 수 있었다. 이야기의 길이는 기억력에 따라서 무한대로 늘릴 수도 있었다.  

  아들이 잠자리에 누우면 커다란 무 얘기를 듣기 위해 졸린 눈을 뜨고 나를 기다렸다. 어떤 때는 등장인물 서넛이 나오면 끝나는 경우도 있었고, 내가 등장인물의 순서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나와도 잠들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옛날 여우들이 사는 마을에 무를 하나 심었는데 무럭무럭 잘 자랐어요. 그런데 여름이 지나면서 무가 너무너무 커졌어요. 어느 날 여우는 무를 뽑기 위해 혼자서 커다란 무를 잡아당겼지만 꼬옴짝도 하지 않았어요.”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때는 ‘꼼’이라는 단어를 강하고 길게 끌어서 정말로 크다는 것을 강조했고, 아들은 입을 벌려 말이 언제 끝날 지를 살피면서 웃을 준비를 하고 있다가 ‘짝’이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웃음을 터트렸다. 웃을 준비를 하고 있다가도 아주 천연덕스럽고 귀엽게 웃었다. 매번 그 대목에서는 웃어 주었다. 나는 더욱 신이 나서 액션을 섞어 크고 길게 호흡을 하기도 했다.    

  “여우는 나 혼자서는 뽑을 수가 없네. 어떡하지? 혼자 중얼거리고 있을 때 당나귀가 지나가고 있었어요.” 이때부터 등장인물은 생각나는 대로 출연시킬 수 있었다.  

  “당나귀야 커다란 무를 뽑는데 도와줄 수 있겠니? 응. 그러지 뭐. 내가 도와줄게. 그래서 여우와 당나귀는 커다란 무를 잡고 영차! 영차! 커다란 무를 잡아당겼어요. 그런데 커다란 무는 꼬오옴짝도 하지 않았어요. 어어! 어떡하지? 그때 사자가 지나가고 있었어요. 사자야 우리 좀 도와줄래? 그래 내가 도와줄게. 그래서 여우와 당나귀와 사자가 영차! 영차! 커다란 무를 잡아당겼어요. 하지만 커다란 무는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줄 사탕처럼 소환해 내는 캐릭터는 나만 생각하는 게 아니고 어느새 합작이 되어 아들이 갑자기 아이언맨을 소환하기도 하고, 코끼리, 악어, 코알라, 독수리 등등 수많은 친구들이  커다란 무를 뽑는데 동원되었다. 

  그리고 처음 등장했던 순서대로 “여우, 당나귀, 사자, 코끼리, 아이언맨, 이티, 태권 V가 힘을 합쳐 커다란 무를 영차! 영차! 하고 잡아당겼어요. 하지만..........” 내가 자칫 순서를 틀리기라도 하면 아들은 아냐 코끼리 다음에 아이언맨이야라고 고쳐주기도 했다. 


  너무 졸리면 그만 뽑자고 먼저 조르기도 했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잠들어 있기도 했다. 어떤 때는 반대로 내가 아들에게 ‘아빠도 좀 재워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그러면 아들은 내 흉내를 제법 내면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야기는 맘만 먹으면 언제든 끝낼 수 있었다.  

  “여우와 당나귀와 사자와.............. 함께 잡아당겼어요. 그때 커다란 무가 쑤~욱 뽑혔어요. 그리고 다 같이 모여 맛있게 나눠 먹었답니다”      


  아들은 지금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 가서 고된 훈련을 받고, 혼자 잠들며, 모두가 잠든 밤에 깨어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옛날 아빠의 커다란 무 이야기 자장가를 아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귀엽고 천진난만한 얼굴이 가끔 떠올라 미소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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