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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벽우 김영래 Apr 09. 2019

모두 피해자가 되는 세상

참, 거짓을 구별하기 힘든 세상

  아침 신문에서 ‘종교의 교리를 전파하는 여자 신도가 찾아와 문을 열어 줬더니 방문판매를 하는 사람이었다.’는 저명인사의 세상 만평을 읽었다. 요즘 인터넷은 물론이고 시내 곳곳에서도 ‘여기 땅 급매’ 또는 ‘이 건물 급매’라는 부동산 광고가 부쩍 눈에 띈다. 돈이 없어 그만한 부동산을 살 엄두를 낼 처지가 못됐지만 하루는 너무 궁금해서 전화를 했더니 그 물건은 이미 팔렸다며 다른 곳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순간 ‘아뿔싸’ 하고 후회를 했다. 이런 수법들은 중고차 허위 매매 수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들에게 내 전화번호와 관심 사항이 저장되어 버린 것에 대해 후회했지만 늦었다. 그리고 며칠 뒤부터 이상한 광고 문자들이 날아왔다.

  진실을 가장 한 가짜 뉴스와 소위 '낚시'로 정보를 획득하는 세상에서 개인이 참과 거짓을 분별해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진실을 분별하기 위해 마음속으로 심하게 갈등했던 사건이 있었다. 세월호 사고가 난 후 두 해가 지난 어느 날 사무실에 건강식품을 판매하러 온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군청색 정장을 입었지만 그렇게 깔끔하거나 신뢰가 가는 외모는 아니었다. 넥타이의 매듭을 얼마나 매만졌는지 손때가 묻어 반들거렸고, 머리는 덥수룩하게 귀를 덮었다. 또 이마엔 세월의 기록을 계급장처럼 달고 있는 주름살이 선명했다. 판촉 허가를 받기 위해 눈을 강렬하게 때론 애처롭게 굴렸다. 진도에서 왔다고 자기를 소개하면서 주변 여건을 잡화점 물건처럼 구구절절 얘기했고, 중간에 세월호 이야기도 슬쩍 끼워 넣었다. 사고가 난 지 두 해가 지났으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날의 슬픔과 분노가 먼지 낀 유리창을 통과한 햇살처럼 뿌옇고 희미해져 이렇게 산 사람들의 삶에 관여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관광객이 끊겨서 당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니 제발 좀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점심을 먹고 난 후라 직원 서너 명이 의자에 삐딱하게 걸터앉아 건성건성 홍보 프레젠테이션을 들었다. 진도 아저씨는 강의가 진행될수록 점점 진지해졌다. 정말 건성건성 듣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블랙홀에 빠져들 듯 그 속으로 내가 들어가 있었다. 궁금한 것을 물어도 보고, 아저씨가 건네주는 약봉지도 받아 마시기도 했다. 온몸으로 확 퍼지는 기운이 당장에라도 끊는 용암처럼 솟을 듯했다. 그리고 막바지에 나오는 특별한 혜택과 함께 주문 계약서가 손에 들려졌다. 그게 손에 들어오는 순간 다행스럽게(?) 마법이 풀렸다. 진짜일까 하는 의문과 6개월치를 하루로 계산하면 천 원 내외의 돈이 되지만 지금 당장 결재해야 할 금액이 만만치 않았다.  

  마른 모래에 물이 스미듯 진정성에 관한 의구심은 채워지지 않았고 , 오히려 갈증처럼 자꾸만 생겨났다. 약효에 관한 아저씨의 자신감과 덤으로 오늘 더 주겠다는 혜택이 신뢰와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는 부메랑으로 날아왔다. 중간쯤에 살아났던 호응과 구매욕이 실제 구매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는 결국 빈손으로 돌아갔다.  

  정직하고 정성스럽게 만들었지만 실제 사고의 여파로 인해 본의 아니게 어려움을 겪고 있을 수도 있는데...... 동정심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구별할 만큼 세상의 공기가 따뜻하거나 넉넉하지 못했다.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없지만 우선 의심부터 하게 만들었다.  

  세상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온갖 떠도는 풍문들이 둥둥 떠다는 공기를 마시고 사는 사람들에게서 정직한 진정성과 진정성 뒤에 숨긴 발톱을 찾고 숨기느라 사람들은 눈동자을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진도 아저씨는 축 처진 어깨로 문을 나갔다. 아직도 그날 그의 뒷모습이 안쓰러워 잊히지 않고 있다. 차라리 속는 셈 치고 한 세트를 살걸 하는 후회가 지금까지도 앙금처럼 남아있다. 설마 진정성 가득한 그를 외면한 것은 아니겠지 하는.  

  요즘은 가짜 뉴스가 너무 많아 팩트체크하는 뉴스까지 생겨났지만 그 팩트체크를 흉내 내는 뉴스가 다시 혼란을 부추키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종당 간에는 각자의 이익 다툼으로 분간하기 힘든 참과 거짓 놀음에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는 오늘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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