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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벽우 김영래 May 02. 2019

거리에서 만나는 타인들 1

그 속에 서 있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

시골에서 서울 갈 일은 많지 않다. 일 년에 열 번 내외로 가는 것 같다. 병원 혹은 가족을 방문하거나  두서너 번 공연을 보러 가는 게 고작이다. 어제는 이가 안 좋아 치과를 찾아 서울에 갔다. 

고속터미널에 내리니 평일임에도 통로를 가득 메운 수많은 사람들. 어깨를 스치듯 지나고, 출입문에서 잠시 머뭇거리기라도 했다간 나갈 타임을 잃어 내 뒤로 줄이 길게 늘어서는 민폐를 끼치게 된다. 가는 방향으로 뒷모습만 보이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려가고, 앞에서 오는 사람들 또한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온다. 비켜갈 틈이 없는 듯 보이는데 부딪치지도 않고 조화롭게 잘도 오간다. 


무표정한 얼굴들이 대부분이고, 옆 사람과 대화하며 웃는 얼굴도 가끔은 보인다. 하지만 대세는 스마트 폰이다. 걸으며 스마트폰을 만지는 사람도 많다. 지하철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다. 진풍경이다. 

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낯선 얼굴인 데다 밀집도까지 높으니 시선 둘 곳이 마땅치 않다. 그중에 가장 민망하고 당황스러운 것이 의자에 앉았을 때 시선의 목적지다. 눈동자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앞에 앉은 사람을 보자니 눈이 마주칠까 겁나고, 그래서 아주 짧게나마 위안을 주는 게 광고다. 하지만 똑같은 내용을 계속 볼 수도 없으니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안 오는 잠을 자려고 눈을 감고 있자니 그것 또한 의미가 없어 결국 스마트폰을 꺼내 들게 된다. 곁눈질로 보면 게임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간혹 뉴스를 읽는 모습도 보인다. 옆 사람이 볼 수 없도록 깨알 같은 글자로 대화를 하는 사람도 있다.  크게 보면 거의 똑같은 행동들로 마치 자동화 프로그램된 듯하다. 


거리의 사람들은 퇴로가 없는 갇힌 바닷물처럼 출렁이는 듯 보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가는 길이 있다는 게 갑자기 신기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무수한 발걸음들이 모두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지 않은가. 묵묵히 있는 듯 보이지만 머릿속에는 희로애락이 있고, 행복한 삶을 위해 일을 하고 있지 않으가.  

나 또한 그들 속에서 출렁이고 있고, 무표정한 얼굴, 프로그램화된 것 같은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치통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오후에는 다시 시골로 내려가기 위해 터미널에 와서 버스를 타고 갈 것이다. 누군가는 일터로, 또 누군가는 밤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연인을 만나러 가고, 아픈 이의 문병을 가고, 한강변으로 산책을 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둠이 내리면 다들 어딘가에 있을 집으로 돌아가고 이곳은 언제 그랬냐는 듯 텅 비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 속에 아는 얼굴이 한 명도 없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얼마나 자주 봤는가에 있다. 부모님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보고 있다. 눈 감아도 언제나 곁에 있는 것처럼 그리운 얼굴이다. 친구나 직장 동료는 처음엔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자꾸 보면서 알게 되었고, 어느 순간 계속해서 보면서 익숙해져 버렸고 마침내  몰랐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지금 서울의 거리에서 내 곁을 스쳐가는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얼굴들이다. 그렇지만 이들 중 어느 한 사람을 계속 만나고 인사를 하면 친구가 될 수 있는 타인들이다. 


낯선 이들로 가득한 이곳에서는 외로움과 자유를 동시에 준다. 전부 다 모르는 사람이니 뒤돌아 서면 바로 남이 된다. 별별 사람들로 가득한 강남 지하상가 한가운데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서 있어도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 없다. 나도 누구 하나를 특정 지어 바라보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기계부품처럼 따로따로 움직이고 있지만 하나의 완전체처럼  한결같은 모양으로 움직이고 있다. 거리를 가득 메운 타인들 속에 서 있는 개개의 타인들은 어떤 존재인가. 그 속에서 남에게 타인이 나는 또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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