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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May 07. 2019

거리에서 만나는 타인들 2

지지난 주 서울로 치과진료를 다녀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를 걸었었다. 신문이나 TV 뉴스의 자료 화면에 나도 모르게 등장했을 수도 있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처럼 누군가 나를 알아보았거나 내가 아는 얼굴이 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잠깐 스치듯 비치는 화면에서는 대부분 모두 남이다. 얼핏 보면 표정 없는 사람들 같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자세히 보면 각자만의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이가 아파서 입을 꾹 다물고 무표정하게 걸었던 것 같다. 


주말에 초등학교 총동문회에 갔었다. 시골이라야 겨우 100여 호 남짓했고, 선, 후배 동문들도 육칠십여 명 정도 참석했다. 학창 시절 전교생이 가장 많았을 때가 이백여 명 정도였고, 한 학년이 한 반이고, 누구 동생이고 형이라서 거의 다 알고 지냈었다. 모교는 폐교가 되었고, 지금은 지적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 아니어서 존폐 위기가 느껴진다. 그렇다 보니 운동장에 풀이 가득하고 체육대회 조차도 못할 정도여서 몇 해 전부터는 시내 체육관이나 수련원 등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 

찾아오는 반가운 사람들이 어렸을 적 보았던 얼굴과 닮은 사람도 있었지만 아주 낯선 얼굴로 변해 있기도 했다. 저 사람 선배 아닌가? 먼저 공손하게 인사를 했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우리 두 해 아래 아무개라고 해서 잠깐 민망하기도 했다. 


동문들 사는 곳도 다양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심지어 태어나서 자란 우리 시골보다도 더 산골에 사는 사람도 있었고, 경상도, 전라도 바닷가까지 없는 곳이 없었다. 무슨 면에 무슨 리까지. 

아! 그 선배. 학교 다닐 때는 그랬는데 참 멀리도 가서 사네. 어쩌다 거기까지 가게 됐을까? 그때는 그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겠지? 체구가 작은 후배 녀석은 축구를 하다 나하고 부딪쳐 부상을 당했었는데 지금은 어엿한 중견 건설회사 사장을 하고 있기도 했다.  

얼굴만 변한 게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고, 삶에 순응하느라 나름대로의 방식들이 몸에 배어 있음이 언듯 언 듯 감지되었다. 하다못해 커피나 술을 마시는 스타일이나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까지도. 왜 그렇지 않겠는가. 벌써 30여 년이란 세월의 강이 흘렀는데.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나누는 짧은 대화가 흘러간 시간의 거리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마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으리라. 많은 부분에서 이질감과 굳어진 대화의 습관들이 쉴 새 없이 벽이 되어 들락거리고 있었다.


문득 서울의 거리가 떠올랐다. 거리에서 스치는 익명의 사람들이 연줄을 타고 타고 하다 보면 수많은 물고기들이 하나의 낚시 바늘에 걸려들 듯 하나의 인연쯤에 걸릴 수 있을 거라고. 자동차를 타고 가다 접촉사고라도 나면 그 상대방이 변해버린 얼굴의 선배나 후배일 수 있을 확률이 꽤 높을 수 있겠다는 생각. 이런 상황을 떠올리면 욕이라도 한마디 날릴 생각은 언감생심, 아예 접어야겠다는 생각. 

익명의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에서는 없던 용기가 나기도 하고, 쓸데없는 만용도 생겨나지만 더욱 조심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느 먼 곳에서 온 누구의 동창생이고 내가 알고 있는 그곳의 사람과 이웃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매일 아침 내 집에 우유를 배달해 주시는 사람, 내 옷을 세탁해 주는 사람,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사람, 멀리서 안내 전화를 받아주는 사람, 여행 중 낯선 곳에서 길을 묻는 사람 등등..... 


거리에서 출렁이며 무리 지어 가는 알지 못하는 타인도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결국은 아는 사람들이다. 내 선배이거나 후배이거나 혹은 그의 아들, 딸 혹은 사촌, 사촌의 사촌, 팔촌일 것이다. 거리의 타인들이 진정한 타인이 아닐 수도 있다.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인연으로 연결된 메비우스 띠 같은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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