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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Aug 08. 2021

사람을 가두고 있는 것들

- 영화 '모가디슈'를 보고

연일 체온을 육박하는 무더위의 맹폭을 견뎌내는 데도 한계점에 이르러 간다는 느낌이 들만큼 지쳐갔다. 에어컨이 생체 컨디션을 유지해주는 유일한 문명의 기기임에 틀림없음을 확인하는 나날이 되고 있다. 더위와는 상관없이 코로나는 자체 업그레이드하면서 두려움과 공포를 다시 키우고 있다. 엎친 데 덮진 격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을 곳이 없다. 휴가철이지만 휴가를 갈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에 영화를 보며 위로받기로 했다.  

영화관은 한적했다. 거리두기로 인해 띄어 앉기를 하다 보니 앞 뒷자리가 텅텅 비어 있는 게 너무 좋았다. 게다가 시베리아 같은 시원한 바람이 슝슝 불어 주니 더위를 찾을 수가 없었다. 서너 시간 집 에어컨의 멈춤으로 인해 아껴지는 전기세로 영화를 공짜로 보는 것 같았다.    


조만간 보겠다고 맘먹었기에 모가디슈가 백만을 돌파했다는 뉴스만 봤지 스포가 될만한 정보는 닫았던 터라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모가디슈는 소말리아의 수도였다. 소말리아라는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게는 우리 어선을 납치해 돈을 요구하는 현대판 해적질을 하는 그런 나라로 밖에 기억에 없었다. 

1987년까지 우리가 UN에 가입하지 못했다거나 UN에 가입하기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을 설득하기 위한 외교적인 노력이 지금에선 생뚱맞게 낯선 사실처럼 느껴졌다.  당연한 사실을 너무 오래도록 누리고 있기 때문인가.  

내란과 전투 장면은 뉴스에서는 절대 볼 수는 사실감과 충격적인 묘사가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고, 복선을 빠르게 파악하는 사람이라면 눈치챌 수 있는 남, 북의 만남도 식상하지 않았다. 생존을 위한 도시 탈출 과정의 긴장감과 스릴 넘치는 액션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탈출에 성공한 남, 북의 외교관과 가족들이 구조기 밖에서 기다리는 각자 배웅나온 사람들을 보고 서둘러 인사를 나눈 후 재빨리 모르는 남남으로 돌아가는 가슴 아픈 장면이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져주는 가장 큰 메시지가 아닐까.     

생존을 위해 공포와 싸우고, 먹고, 잠자고, 생리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각자가 서로 기댈 힘을 주고 받았다. 깻잎 한 장을 먹는데 얼마 전까지 적처럼 대하며 살았던 사람의 젓가락이 필요했던 장면을 연출한 감독의 세심한 표현력이 감동적이었다.   

그들을 태운 구조기 창밖은 다시 그들이 살아가야 할 현실 세상이 었다. 생존 과정에서 엮인 그들의 협동심과 인간적 관계를 스스로 끊어 버려야만 하는 비극과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은 사람이 만든 정체도 없는 이념이나 사상 따위의 허울에 갇혀 사는 건 아닌가. 그것이 무엇이길래 사람이 사람에 기대어 살아가는 본성까지도 감추고 스스로 두려워해야만 하는가. 신념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구나. 더구나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세에 의해 갈라져 수 십 년을 대치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민족의 비극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버스에 오르는 순간까지 곁눈질로도 볼 수 없게 만든 비극적 상황이 안타까워 눈물이 핑 돌았다. 제발 한 번만 돌아보았으면....  


지금 나도 무언가에 갇여 쓸데없는 데 힘을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허상에 휘둘리며 나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무더위를 잊고자 찾았던 영화관을 나오면서 복잡한 생각들에 휩싸여 돌아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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