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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Sep 11. 2021

수술방 앞에서

당신에게 쓰는 편지

당신과 함께한 시간이 인생에서 절반이 된 것 같은데 처음으로 병 캉스(병원에서 휴가를 보내는 일)를 하는 것 같군. 5년 전에 발견했을 때 바로 수술했어야 했는데 미루다 결국 키워서 목을 누르는 답답함에 이제야 병원을 찾은 게 너무 아쉽네. 그때 바로 수술했더라면 쉬울 수도 있었는데. 난 겁이 많아 그런 수술을 한다면 떨리고 불안할 텐데 '괜찮아 잘 될 거야' 하면서 담담하게 되려 날 위로하는 당신을 마주할 때 진짜 안심이 됐거든. 

매일 출근하는 사람 아침밥 해주랴. 시시때때로 땀 흘린 빨랫감 던져주고, 금방 일 끝내고 소파에 앉은 사람에게 간식 찾던 일 등 일상 속 작은 것들이 떠올라 당신한테 미안해지네. 그런 생각들은 왜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더 미안하게.  


수술 잘하고 나오면 당신과 더 많이 함께 있어 줄게. 당신 관리는 내가 책임진다. 수술실 들어갈 때 잡은 손이 차더라고.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맘 같아선 곁에 있어 주고 싶었어. 침대에 실려 유리문 안으로 들어가는 당신 눈이 촉촉해진 모습을 보고 간신히 참았는데 보호자 대기실 앞 모니터에 당신 이름 뜨고 수술 중이라는 빨간 글씨를 보니 주책없이 눈물이 주르르 흐르잖아. 마스크가 이럴 땐 좋더라.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티가 안 나니까. 벌써 이십 분이 지나고 있어. 잘하고 있지? 


당신 다니던 학원 옆 교회 주차장에서 짧은 저녁시간에 김밥 먹으며 연애할 때 생각이 나네. 꽃다발 한 번도 안 사줬다고 뭐라 했잖아. 근데 그때 프리지어 꽃다발 사줬잖아. 물론 그 이후로 돈을 아끼는 차원에서 소홀하긴 했지. 직장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차도 당신과 연애하려고 샀잖아. 엑셀 2100. 93년식을 06년 퇴근길 교차로 중간에서 퍼지기 전까지 꽤 오래 탔어. 그리고 당신이 새 차를 사줬지. 정말 좋았어.  

우리 애들은 당신 같은 좋은 엄마를 만나 행복할 거야. 그걸 녀석들이 알까 몰라.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엄마가 있고, 따뜻한 밥을 먹여야 한다며 학원 수업도 중간에 빼고 늘 집에서 대기했지. 명절 때 받은 세뱃돈을 천만 원도 넘게 모아 주었잖아. 세상에 이런 엄마가 있냐며 우체국 직원도 놀랬었지. 글 쓰는 중에 수술 중이라고 문자가 오네. 당신이 잘 견디고 있다는 거겠지. 


우리 지금까지 잘 해왔지. 그런데 내 퇴직이 얼마 안 남았어. 퇴직하고 나면 꼭 당신하고 제주도 한 달 살기 갈 거거든 절반은 걸어서 다닐 거야. 운동 열심히 해야 할 거야. 한 달에 한 번 이상 여행도 다닐 거거든. 경치 좋은 곳에서 난 글 쓰고 당신은 그림 그리는 거야. 당신 그림 잘 그리는 거는 인정한다. 그러려면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 돼. 

그런데 사실은 내가 병원에 더 많이 다니지. 먹는 약도 서너 가지가 되니까. 당신 말 안 듣고 무리하다 건강을 해치고 나서 후회했어. 마누라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데. 당신 말 잘 듣을걸. 내 맘도 안 좋은데 당신도 속상하겠지. 앞으로 말 잘 들을 게. 당신도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습관처럼 하는 말 있잖아. 운동 좀 열심히 하자. 그거 하나야.


수술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났네. 내 목에 건 보호자 명찰이 당신을 위한 거라서 다행이다. 수술실 유리문이 열리면서 ooo 보호자님 하고 부르면 내가 얼른 달려가 손 잡아줄게. 요즘 왜 그렇게 눈물이 많아졌나 몰라. 드라마 보다가도 울고, 감동적인 뉴스를 읽다가도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니까. 주책맞게. 수술이 끝나고 회복 중이라고 뜬다. 이만 마무리하고 당신 나오는 문 앞으로 가야지. 좀 이따 보자고. 

                                                                          2021. 9.1. 수술방 앞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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