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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Sep 13. 2021

책이란

쌓여만 있어도 내게 스미는 지식들

지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주로 에세이랑 소설책인데 가져가겠냐고 물었다. 당근, 가져가야지. 

가는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 버리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무겁고 지저분하다 여기나?'    

그럼 그 사람은 이렇게 묻겠지.  

'너 책 가져가서 다 읽냐? 읽지도 않고 쌓아 둘 거잖아. 너무 지적 허영 덩어리 아니니?'라고.

누가 보고 듣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끊이지 않고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런가. 모르겠다. 난 그냥 쌓아 놓기만 해도 좋아.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그 많은 책들 중에서 한 권쯤은 읽지 않을까? 그럼 된 거지.'   


작은 박스 5개에 가득 담긴 책을 싣고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기쁘던지. 빨리 꺼내 보고 싶은 궁금증을 견디기 힘들었다. 빨간 신호등에 차가 멈출 때마다 애인 보듯 뒷자리를 흐뭇하게 돌아봤다. 땀에 흠뻑 젖으며 서재로 옮겨 놓고 박스를 열었다. 오래된 특유의 책 냄새가 풍겨왔고, 누워 켜켜이 쌓였고, 빈 틈에 세로로 끼워진 책 제목들이 빼꼼하게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화차,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탈무드, 이솝우화,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천사의 부름,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풍경,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빠빠라기,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등등.  하나하나 꺼내 보며 제목이라도 다 적고 싶다.      


값 비싼 고서도 아닌 낡은 책들을 쌓아 놓고 뭐할 거냐는 핀잔이나 듣기 십상이다. 게다가 이 책들을 언제 다 읽을 것이며, 다 읽었다고 한들 서 너 문장이나 기억할까. 대부분은 다 잊을 텐데. 책 읽는 게 소용없는 일 아닌가. 

단연코 아닐 것이다. 책 속엔 세상만사가 다 담겨있다. 내용을 다 기억하진 못하더라도 한 번쯤 스쳐간 것들은 머리든 몸이든 어떤 식으로 기억할 거라 믿는다. 그래서 책이 지혜의 샘물이지. 책들 속에 있으면 난 배부르다.     


책 읽는 방식에 있어 아직 전자책이 낯설다. 좋은 문장이 있으면 밑 줄도 긋고, 메모지도 붙여 놓고, 독서대에 받쳐 놓고 필기감 좋은 만년필로 따라 써보기도 해야 하는데 전자책에서는 그런 감성을 느낄 수가 없다. 책 장 넘기는 소리가 더 실감 나게 들리긴 하지만 종이 질감을 손가락이 느끼며 다음장을 넘길 준비로 페이지 끝부분을 잡고 있는 긴장감도 없잖은가. 

방 안 가득 책이 쌓인 곳에 있으면 그 지혜의 절반이 저절로 내게 스며드는 것 같은 기분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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