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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벽우 김영래 Jan 16. 2019

난 누구와 대화하지?

사람의 음성으로 대화했으면

  우리 사회는 어제부턴가 소통이라는 단어가 꽤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아마도 소통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은 속도(speed)의 개념이 생활에 깊숙이 들어오면서부터 일 듯 싶다. 이 속도를 따라잡는 것은 체력 문제(시력이거나, 오랫동안 앉아서 버틸 수 있는) 일 수도 있지만 신체적인 조건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최첨단 통신기기들로 무장된 스마트함이라는 조건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먼저 선점하거나, 알아채거나, 작동하거나, 활용하거나, 창조하거나 기타 등등의 문제. 이런 와중에 변화의 스피드를 눈치 채지 못했거나 상상력이 부족하거나 전혀 느껴보지 못한 문제가 눈앞에 펼쳐진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스피드를 내야 할 시간인데 그것이 없거나 경제력이 부족하다면 차이는 점점 더 많이 벌어지게 될 것이고, 사이보그 세상에서 뒤처져 버린 사람은 깊은 바닷속에 빠진 것보다 더 절망적이고, 위험하게 될 것이다. 

  나름대로 변화에 적응하려 애쓰는 50대로 접어든 나로서는 인터넷과 핸드폰으로 시작된 스마트 열차에 간신히 올라타긴 했지만 나의 순발력은 점점 느려지는데 반해 변화의 속도는 그야말로 초고속으로 달려가니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세상과의 갭이 커져만 가는 것을 느끼고 바라보고만 있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정보화의 소용돌이는 거대한 기계장치가 있고, 빌딩이 있는 도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고개를 돌리는 왼쪽과 오른쪽, 혹은 등 뒤,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얼마 전에 신용카드 관련해서 궁금한 것이 있어 회사에 전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전화를 하고 상대방이 받아서 음성으로 대화를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대표 전화번호라고 하는 것이 통화를 하면서 상담을 하는 것인데, 앞에 네 자리 뒤에 네 자리 숫자니 이곳이 서울인지 부산인지 도통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 가장한 기계가 대답을 한다. 그것도 내가 궁금해서 물어볼게 뭔지에 관해서 관심이 없다. 자기들이 설정해 놓은 가상의 궁금증에 내가 찾고자 하는 것과 가장 비슷한 것을 찾아 번호를 누르고 다음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잠시 안심이 되는 듯 하지만 또다시 세부적인 궁금증에 접근하는 번호를 눌러야 한다. 내가 원하는 내용이 없거나 잘못 누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인내심의 시험은 계속된다. 머리의 피가 좀 격하게 돈다 싶을 정도지만 방법이 따로 없으니  꾸준히 참으면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궁금증과 내 궁금증의 일치를 위해 집중해야만 한다.   아! 마침내 찾아서 반갑게 맞이할 인간의 음성을 기대한 결과는 순식간에 뭉개져 버린다. “지금 대기 고객이 많아 잠시 기다리시면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머릿속은 마치 펄펄 끊는 마그마가 마침내 세상으로 분출하는 활화산과 같이 분노지수가 치솟는다. 나 자신이 어디까지 어떻게 참아서 폭발해야 할지 가늠할 수가 없다. 참아야겠지. 그들에게 화를 내는 건 아메바 같은 행동일 뿐이라며 다독였다. 내가 믿고 기댈 수 있는 건 사람밖에 없는데. 마침내 연결될 신비롭고 반가운 동일한 유전체를 가진 인간의 육성을 들으며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와 마주 대화할 그들 역시도 사이보그의 세상 끝에 서서 온갖 시련을 견디고 견뎌 찾아온 사람들을 맞을 준비로 항상 바쁜, 고마운 사람들 이 아닌가. 

  소통은 상대방의 심정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정도의 포용력은 있어야 진정한 소통이 될 수 있다. 막연한 범주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의 범위를 판단해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답을 주는 것이다. 관공서나 병원 기업 등의 고객센터만큼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래도 사람들이 아랫목처럼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대화하는 그런 곳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 그건 다른 부서에 있는 아무개 씨가 담당하는데 그분 바꿔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통화 대기하시는 분이 세 분 계신데 좀 기다리실 수 있으시겠어요?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사람의 일을 사람이 해결하는 기본적인 정보화 사회의 모습을 꿈꾸는 것이 점점 미련한 바람이지만은 않은 일이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사람에 기대어 살 때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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