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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벽우 김영래 Jan 15. 2019

무정하고 무심한 세상

평범한 일상 속에  관심을

  아침 출근 준비는 바쁘다. 다른 시간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리는 시간의 느낌을 나만 느끼는 것일까? 

  물 마시고, 양치하는 시간도 꽤 길다. 돌아보면 1분이 그야말로 쏜 살 같다. 10여분을 당겨 여유를 갖기란 돌덩이를 옮기는 것처럼 힘들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서둘러 차에 올라 달리다 보면 내가 지금 신호를 보고 운전을 한 것인지 의심이 들어 뜨끔할 때가 있다. 교차로 좌측 도로에서 달리는 차들이 멈추고 나란히 서 있는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 차례가 온 것으로 알고 반사적으로 달리게 된다. 수많은 출근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갈대가 바람에 휩쓸리 듯 그렇게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자동화된 공장에서 하나의 부품만을 계속 조립하는 숙련공이 어느 순간에 자신이 만드는 제품이 뭔지도 잘 모르게 된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규격화된 혹은 똑같은 일상이 반복될 때 우리는 마치 기계적으로 움직이거나 다른 생각들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달리 생각해 볼 수도 있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면서 마치 로봇처럼 무념무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은 좀 이상하고 특별했다.  시계 추보다 바쁜 나의 루틴만으로 출근 준비를 하면서 안방에서 양말을 신고 있었다. 아내는 아침을 준비하면서 TV 뉴스를 습관처럼 켜 놓는다. 뉴스를 듣기도 하지만 출근시간을 체크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냥 알아들을 수 없는 뭉뚱그려진 소리의 덩어리로만 인식되기도 한다. 그건 내가 듣고자 하는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말이 무슨 소린지 잘 이해가 안 되면 자신의 아침 일상을 곰곰이 리플레이해보면 이해가 될 수도 있다. 사람에게는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릴 때가 있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듣지 않을 수 있는 능력도 있다. 듣고 싶지 않지만 더욱 또렷하게 그 소리만 들릴 때도 있다. 신경과 집중의 오묘함이다. 

  거의 매일 들리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의미 없는 소리의 덩어리로 들렸는데 오늘따라 남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정책에 반대하며 서울 대로변에서 ○○○씨가 분신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복잡한 이해관계야 당사자가 아니라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목숨을 버릴 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선택한 죽음을 전하고 있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 또한 여전히 맑고, 죽은 이의 신념처럼 강하고, 또렷한 음성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 듯 순식간에 화면이 바뀌었다. 날씨를 전하는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며칠 혹한의 강추위가 계속된 후 예년보다 포근해진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살짝 웃음끼가 묻어나는 밝고 명랑한 목소리였다. 


  순간 이건 뭐지. 방금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신념을 위해 목숨을 던진 절박한 인간의 소식을 전하던 목소리를  걷어내는 마법 같은 천상의 소리. 여느 때처럼 무정하거나 무심하게 지나치며 소리의 덩어리로 들렸던 것이 커피에 우유가 퍼지며 휘감기 듯 뒤섞이는 묘한 감정의 변화가 일어났다. 

  세상은 누군가의 슬픔이나 절박함도, 누군가의 기쁨이나 희망도 똑같은 일상으로 기록하고 있구나. 그런 소식을 듣는 사람들도 기계 같은 일상 속에서 아나운서의 목소리처럼 한 옥타브의 음으로 평범하게 그냥 소리의 덩어리로만 듣는 것은 아닐까.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동물의 왕국이나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를 자주 보게 되었다. 이건 나이 먹어감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 같기도 하지만 그냥 줄거리만 들려주는 뉴스보다는 슬프면 왜 슬프고, 기쁘면 왜 기쁜지 세상일에 좀 더 간섭하고, 관심 갖고 싶어 진 때문이 아닐까.  무정하고 무심한 세상에서 바람 불고, 비 오다가 또 눈 내리는 세상을 이고 있는 땅을 이해하고 싶어 진 것은 아닐까. 

  세상은 내가 보는 곳에 언제나 있기에 그 세상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보살펴야겠다. 작은 싹이 나무가 되고 꽃이 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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