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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May 14. 2019

내 삶에 나를 가두지 않기 위하여

모르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님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내가 사는 주변 가까운 곳에 크고 작은 문화유적지들이 있다. 어릴 때부터 본 것들이라 유적지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산보하기 좋은 곳이라서 걷거나 달리기도 했고, 휴일엔 돗자리 펴고 쉬는 곳으로 찾았다. 그런데 유적지에 관한 사연들을 알고 나면 매직아이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보인다. 숲 속에 달랑 정자 하나 있을 뿐인데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보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다시 보게 된다. 아니 다시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비단 유적지나 풍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음이 닫혀 있으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가끔 사무실로 진정민원 전화가 걸려 올 때가 있다. 상대방은 자신의 요구나 이해에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법규나 관련 규정에 대한 설명은 처음부터 들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내가 무심코 던진 말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자신에게 유리한 단어에만 집착하는 또 다른 오류를 범하게 된다. 


  지난해 충주에서 개최된 세계소방관경기대회 행정요원으로 안내업무를 맡으면서 개막식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 출연하는 가수가 꽤 여러 명이었는데 내가 아는 가수는 두 명이었고, 신세대 아이돌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더 난감했던 것은 그들의 노랫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일정한 리듬과 중얼거림만 있는 랩 가수의 노래는 언제 시작했고, 언제 끝났는지 알 수 없었다. 한쪽으로 몸을 한껏 웅크린 채 한 손을 길게 뻗어 하늘을 찌르는 듯한 동작과 가끔 괴성(?) 같은 함성만 있었다. 주변을 가득 메운 청소년 팬들은 열정적인 환호성과 상징 굿즈를 쉼 없이 흔들고, 떼창을 하는 모습이 내게는 너무 생경하고 이채로웠다. 옆에 있던 동료에게 귀엣말로 “뭐라는지 노랫말이 들려?”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건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음역대의 노래.”라는 것이었다. 등장부터 퇴장까지 그가 노래를 부르고 간 것인지 만담을 하고 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에 올라온 아이돌의 노래가 좀 더 리듬감이 있긴 했지만 역시 들을 수 있는 음역대는 아니었다. 얼마 전 TV에서 70대 노인이 신세대 아이돌 노래를 불러 유명세를 탔고, 유튜브에서도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시도 자체가 신선하고 도전적이기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다. 아예 모르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알려고 하면 들리기는 할까. 궁금하다.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쑥스럽고 자신이 없다. 마치 낯선 곳에 혼자 있는 것처럼.


  아들, 딸과 대화도 쉽지 않은 요즘이다. 그들의 열정과 관심에 대해 귀 기울이지 않으면 골은 더 깊어지고 벽은 높아만 갈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들에 대한 심정적인 이해와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여야겠다. 내 삶에 스스로 나를 가두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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