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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Jul 24. 2019

5G와 오지

  일요일 와이프 생일을 맞아 처갓집 식구들을 초대해서 점심 식사를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처남이  입주한 새 아파트를 방문했다. 처남이 부모님께 신기술을 자랑삼아 보여드리기 위해 TV를 켜고 끄는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말을 걸었다. 

  “지니 야” 하고 부르자 스피커에서 낮고 공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TV 켜줘”

  잠시 후 TV가 켜졌다. 그리고 원하는 번호를 말하니 채널도 옮겨줬다. 몇 번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인공지능 스피커와 대화를 하니 장인어른 하시는 말씀,

  “그만해라 그 사람 힘들잖아.”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처갓집에 얼마 전 인터넷을 연결해 Wi-Fi를 설치했다. 그런데 핸드폰에 와이파이를 연결해도 뭐가 잘못됐는지 실제 데이터가 전송되지 않았다. 아내와 대화를 하면서   

  “여기는 5G가 안되나 봐” 우리 대화하는 걸 듣고 있던 장인이 

  “도시가스가 안 들어오니 아직 여기는 오지(奧地)야”

  처음에 도시가스 얘기가 나와서 좀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산간벽지의 '오지'라는 뜻으로 이해를 하셨던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이나 사물 등을 이해하는 데는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은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경험이나 지식의 범주 내에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접했을 땐 대부분 당황하거나 머뭇거릴 것이다. 아주 특별히 침착하거나 슬기롭게 대처를 했다고 자부할 만한 일도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알았거나, 하던 방식에 바탕을 둔 지식이나 경험 범위 내에 있는 것들이다.  

  가끔 우주인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왜 사람의 형태처럼 만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자주 갖곤 했다. 그들은 약간 변형된 모양의 손, 발을 갖고 있으며, 심지어는 우리가 쓰는 언어도 그대로 쓰고 있다. 다른 히어로 영화들도 유사하다. 경험의 한계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빠르게 변하는 정보통신기술과 그 기술을 실감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에게 이런 지체현상이 자주 나타나곤 한다. 


  이런 문화지체 현상들이 정보통신 등 빠르게 변하는 분야에서 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가끔 보통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발언을 해 관심의 대상이 되는 정치인이나 유명인들이 있다. 물론 노이즈 마케팅이나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순수한 의미로 본다면 그냥 그들의 생활이나 관심, 지식이 그 범위 내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우며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걸 탓하는 세상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여길 수 있다. 편향된 지식이나 고집이 강해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  

  이렇듯 세상의 수많은 크고 작은 갈등들은 이러한 경험과 지식과 견해의 차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5G를 오지(奧地)로 이해하거나 인공지능 스피커에 인격이 부여되는 일이 웃을 일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의 범위를 넘어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영역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본다. 내가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이미 삶의 주변에서 보편성을 띠며 적용되고 있으니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앞으로 상상할 수 없는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면 나 또한 그러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사람이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의 범위를 벗어나기는 영영 불가능할 것이다. 모든것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다만 우리가 그 불가능의 폭을 조금이라도 좁힐 수 있는 것은 직간접적인 다양한 경험을 통해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고, 여러 가지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것 등등 -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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