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시끄럽고, 축축하고, 어설프고, 구중중한데도 안심이 된다. 겨울 끝에 오는 비가 안심인 이유는 추위를 보내고 봄을 데려오기 때문이다. 여름 장맛비는 구중중하고 사납지만 봄비는 허브처럼 상큼하고 보드라운 희망 느낌이다.
계절 중에서 가장 시끄럽게 오는 건 봄이다. 그중에서도 봄비가 올 때다. 시끄러운데 잘 들리지 않는다니 이상하다. 그런데 그 시끄러운 소리가 지하실 또는 뱃속같이 어두운 저 밑에서 난다.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새록새록. 쭈뼛. 스륵. 졸졸.
세상 모든 소리는 봄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겨울에는 잠을 잔다. 그래서 봄은 시장처럼 시끌벅적하다.
어젯밤에도 멀쩡했었는데 아침 창문 밖이 시끌시끌하다. 아스팔트 색이 검게 변해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몇 방울 맞으며 차에 올랐다. 와이퍼를 작동하니 눈 먼지에 염화칼슘 얼룩이 한 방에 클리어다. 속이다 시원하다. 많이 깔끔 떠는 편이 아닌데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깥에서 딸려 온 선뜻한 기운이 외투 깃을 파고 들어오는 온풍기 바람에 쏜살같이 달아났다. 여느 때 같으면 숨이 막혀 답답했는데 바삭한 건조함이 포근하게 다가왔다. 고소하고 따스한 커피 향까지 묻어나니 오늘은 왠지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처럼 기분이 한껏 업되었다. 어제만 해도 '코로나 19'로 인해 암울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빗물에 깨끗이 씻겨나갈 것 같은 희망도 생겼다.
봄비 오는 날은 휴가 내서 커피 향 죽이는 카페에 앉아 하루 종일 바깥 풍경만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고, 고요하게 행복할 듯하다.
비 오는 풍경을 사진에 담으려니 쉽지 않다. 심지어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에서도 표현되지 않았다. 눈에 잘 보이는 비 모습이 렌즈엔 담기지 않는다. 물웅덩이 동심원으로, 유리창 물방울로 맺혀서야 비로소 존재가 드러난다. 혹은 덩굴처럼 처마를 타고 내리는 물줄기에서 비가 되었다.
그는 이런 존재다. 부랑자처럼 떠다니던 세상 모든 먼지와 얼룩을 씻어내며, 지쳐가던 초록의 솔 잎을 덧칠하며, 체한 것처럼 얹혀있던 계절의 시간을 풀며, 따스한 커피 한 모금으로 마음을 들썩이는 게 만들며, 청바지에 가벼운 재킷을 걸치고 경쾌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낭만주의자 거나 감성주의다.
이 낭만주의자 거나 혹은 감성주의자가 이번에는 과학자가 되어 '코로나 19'로 뒤덮인 우울하고 불안한 세상을 깨끗하게 씻어줬으면. 따뜻하고 향기로운 커피 한 잔 들고, 이 밤 시끄러운 봄을 데려오느라 애쓰는 어둠속의 비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