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다, 행복하다, 상상

by 벽우 김영래

상상 1.

상상의 힘은 언제 발휘될까? 행운과 행복이 더해질 때, 또는 불운과 불행이 겹쳐질 때. 당연 후자 쪽일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지치고 힘들 때 그 고난을 벗어나는 상상을 더 많이 할 것 같다. 지금 순간을 벗어나기 위한 위안으로 삼고자.

주머니가 가난해지면 혹시라도 내가 가진 주식이 어느 날 천정부지로 오르는 상상을 한다. 일확천금의 상상은 고난 또는 고통, 불행(가난하거나 그로 인해 현실이 암울하다고 느끼는 경우)의 무게에 반비례하는 풍선의 크기로 다가온다.

길거리 모퉁이 가게에서 우연찮게 산 복권이 당첨되어 생전 보지도 못한 (,)가 한 서너 개 찍히는 숫자들이 인쇄된 통장을 보는 상상. 당장 은행 대출금 갚고, 꿈길 같은 숲 속에 근사한 북카페를 운영하며 여유롭게 삶을 즐기는 그런 상상. 좋겠지. 이런 건 나만하는 상상인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거나 가능성이 너무 적어서 오히려 즐겁다.


상상 2.

브런치나 책을 읽을 때 좋은 글귀를 보면 필사하는 습관이 있다. 빈 종이에 따라 적으며 글쓴이의 마음을 속속들이 되새김하며 읽게 되고, 나도 그렇게 쓰고 싶은 바램도 생긴다.

미셀 투르니에의 <외면 일기>를 읽다가 자크 프레베르의 글귀를 인용한 한 줄을 읽었다. "만약에 물고기가 이름을 붙였더라면 대지를 바다라고 불렀을 것이다." 작가의 상상력에 머리를 맞은 듯 띵하고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물고기가 이름을 붙인다면 자기들의 세상이 대지이고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바다라는 역지사지의 표현을 생각해 내려 얼마나 고심하고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했을까. 이러느라 작가들이 커피와 담배를 물고 사나. 상상력에 힘을 쓰느라 빨리 늙고, 단명하고, 기이해지나 싶기도 하고. 난 그러지 못하니 유명 작가가 되긴 글렀지.


상상 3.

상상하면 뭐니 뭐니 해도 영화다. 현실에선 전혀 불가능한 것들이 마치 현실처럼 느껴지도록 꾸미는 장치들이 있다. 두 세발만 더 옮기면 들통이 날 주인공의 해킹 장면이 문을 여는 순간 온 데 간데 없어진다거나, 총을 맞은 주인공이 강물로 떨어졌는데 몇 개월 후 다시 모습을 나타내는 장면들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아챌 정도로 보편화된 복선들이다.

1984년 메릴 스트립과 로버드 드니로가 나오는 <폴링 인 러브>인 줄 알고 클릭을 했는데 2019년 크리스티니 밀리안과 아담 데모스가 주연한 <폴링 인 러브>였다. 폭력, 액션이 주를 이루는 넷플릭스 영화의 홍수 속에서 오랜만에 본 러브리한 로맨스 영화였다.

회사 생활에 찌든 커리어 우먼 가브리엘라가 우연히 보게 된 뉴질랜드 빌버 드 벨리 팜 호텔의 소유자가 될 수 있는 이벤트에 응모하고 당첨되는 것이 가장 영화적인 상상력이었다. 비록 낡고 폐허가 된 시골 마을의 호텔이긴 하지만 길에서 우연히 만난 제이크와 함께 호텔을 수리하고 사랑에 빠지는 어쩌면 식상할 수 있는 뻔한 스토리임에도 영화를 보는 이에겐 '내게도 사랑이'혹은 '내게도 그런 행운'이 왔으면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상상의 사전적 의미를 이렇게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상상 : 1. 돈이 들지 않으며, 크기와 무게가 정해지지 않은 꿈의 또 다른 말.

2. 병도 주고 약도 주는 말로 지나침이 없는 중용의 도를 지켜야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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