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위한, 혹은 하지 않을 '핑계'

by 벽우 김영래

네이버 사전에서 '핑계'는 내키지 아니하는 사태를 피하거나 사실을 감추려고 방패막이가 되는 다른 일을 내세움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유사어로 변명이나 꼬투리가 있다.

어의에 뭔가 부정적인 뉘앙스가 묻어난다. 현재의 상태를 모면하기 위한 얕은 꽤 와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목표'라는 단어와 견주어 볼 때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쉽게 성취욕을 불러올 수 있고,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다면 핑계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 수 있다. 목표 대신 핑계를 넣어서 글을 지어 보겠다.


핑계 1.

뭔가 해야 할 때, 하고 싶고, 해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냥 무던히 그런 것보다는 핑계가 있는 의지는 성취에 대한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망망대해에 그냥 정처 없이 떠 있는 배는 무료하다. 길을 잡지 못한 그 무료함은 질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 돛에 바람을 걸어 저 멀리 보이는 섬에 가겠다는 핑계를 댄다면 분위기는 금세 달라질 것이다. 계획하고, 준비하고 움직이게 된다. 성공은 성공대로, 실패는 실패대로 핑계의 의미가 작동한다.


핑계 2.

뭔가 하지 않을 때, 하기 싫을 때도 핑계가 필요하다. 합리적으로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서. 그래서 항상 찾고 준비하게 된다.

중국어 공부를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었다. 잘 늘지도 않는 데다 이걸 언제 써먹지. 평생 한 번도 못쓸지 모르는데. 좀 있으면 완벽한 통역기가 나와 내가 하는 말이 저절로 번역되는 시대가 올 거야. 차라리 책이나 더 읽고 그 시간에 글을 쓰자.

몇 달 전에 비해 책을 더 많이 읽은 것도, 글을 더 많이 쓴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하루에 열 단어씩만 외웠더라도 100개는 더 외웠겠지.


핑계 3.

시간이 흐르는 것을 비로소 보게 되는 건 안타깝게도 그 시간이 지나간 뒤다. 마치 바람이 지나는 것을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는 것과 흡사하게 추상적이다. 실체가 없으면서 실체가 있다. 그러니 어리석은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다. 늘 눈 앞의 현실에만 주목한다.

이제부터 눈 앞의 삶에 핑계를 만들어 뭔가를 해야겠다. 해야 하는 핑계를 만들기로. 그래야 지금 내 앞을 지나는 시간을 조금 뒤에 뿌듯하게 보게 될 테니.


오늘은 어떤 단어로 핑계를 만들어 글을 쓸까?처럼. 이런 생각으로 집어 든 첫 단어가 핑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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