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못 알아봐서 고마운, 첫사랑 2

by 벽우 김영래

그녀가 동현이를 처음 만난 것은 중2 때였다. 둘의 만남과 헤어짐이 아주 어린 나이였고, 겉으로 보기엔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평온하고 잔잔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여전히 가슴 뛰는 감정이었고, 어려서 더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이었다. 신통하게도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냈나 생각하면 그녀 자신이 스스로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거대한 파도 같은 사건이었는데 말이다.

그날도 그녀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학교 후문 길모퉁이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삼각 김밥 한 줄과 컵라면 하나로 저녁을 해결할 참이었다. 사천 오백 원이면 좀 더 보테 식당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중2 여학생이 식당에서 혼밥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익명성이 기대어 볼 수 있지만 몇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 천지인 작은 시골 도시에서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과 말, 어색함 등 견뎌내야 할 걸림돌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백 원이라도 절약해야 했기도 했다.


그녀의 평범했던 일상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은 한 번도 상상하지 않은 일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아빠가 실직을 했다. 아빠는 A시에 있는 유명 자동차 회사의 현장 노동자였다. 남들이 얘기하는 그 중산층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해도 크게 부족함도 없는 보통의 가정이었다. 엄마는 그냥 집에서 살림만 하는 현모양처였다. 아빠가 쉬는 주말에는 네 식구가 모여 외식도 하고, 휴가철엔 해외여행도 자주 다녔다.

아빠가 실직을 당하면서 생활은 급격하게 변했다. 평범했던 사람이 투사로 변해갔다. 잠깐 집에 들러 잠을 자던 아빠의 머리맡에 놓인 ‘해고는 살인’이라고 적힌 빨간 머리띠가 그녀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로 아직도 남아 있었다.

아빠가 실직할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마치 지진이 나기 전 동물들의 이상행동과도 같은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었지만 막을 힘도 없었고, 누가 나서서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가 앞만 보고 걷기만 했다는 신문 사설을 나중에 읽었다. 마침내 무방비 상태로 정면에서 그 파도를 맞았고, 휘청거리는 난파선을 구하기 위해서 힘없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아빠도 그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판에 회사가 멀쩡할 리 없었다. 뉴스에서는 연일 나라 경제를 걱정하는 소식으로 채워졌고 그 구실을 빌미로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길거리로 내몰렸다. 경제관료나 회사 임원들 중 누구도 책임 지지 않았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칼을 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칼날은 늘 밖으로만 향했다. 기자들이 전하는 뉴스에서도 해고는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포장을 씌운 채 전파를 타고 우리 집 울타리를 넘어왔다. 아빠는 매일 총파업 현장에 있었고 동료들과 함께 싸웠지만 바위와 같았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살아남은 사람과 해고된 사람으로 갈라졌고, 쫓겨난 사람들이 회사 문 앞에서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사람들과 대치하며 시위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한 복판에서 시위를 하다가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경찰과 노동자들이 희생됐다. 언론이나 정부는 모두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돌려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죄를 물어 감옥에 보냈다. 아빠는 화재 때 발생한 유독가스를 마셔 폐가 나빠졌지만 예초기 칼날에 잘린 잔디처럼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책임을 물었다. 희생에 대한 슬픔이나 사과는 고사하고 허접한 재발방지 대책 하나 없었다. 애초에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 하려는 따위의 제스처도 없었다. 마치 희생을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과 정부가 함께 살점을 물어뜯었고, 발가벗겨진 채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잘 짜인 각본에 의해 연출된 영화처럼 그렇게 감방에 보내졌다.

아빠는 감옥에서 2년을 보냈고, 폐병이 심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그동안 가족 부양을 위해 온갖 일을 다했고, 아빠 병원비를 대기 위해 아파트며 재산을 다 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실질적인 가장이 된 엄마는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식당을 전전하며 일을 계속했다. 아빠의 직장이 있던 곳에서 안면이 있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집이 없어졌기에 그녀는 아빠와 동생 민혁이를 데리고 엄마와 떨어져 할아버지가 있는 시골로 내려왔다. 그녀는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용돈이라도 벌어 쓰기 위해 담임 선생님 소개로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다.

그를 처음 만나던 그날도 그녀는 저녁 끼니를 해결하려고 삼각 김밥 하나를 들고 컵라면을 고르고 있었다. 낮익은 남학생 하나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와이셔츠 교복은 바지 밖으로 빠져 있었고,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에 젖은 머리가 엉클어져 있었지만 키가 크고 목덜미가 하얀 게 온화한 이미지를 풍겼다. 그녀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그 애를 몇 번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생수를 고르는 그를 지나 계산대로 갔다. 정확하게 사천 오백 원을 준비해서 포인트 카드와 함께 내밀었다. 그때 그가 뒤에서 계산대 앞으로 생수 한 통을 놓더니 카드지갑을 뒤적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계산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도 그러는 그가 황당하고 기분 나빴다. 계산을 끝내고 돌아서려다 뒤에 있는 그와 하마터면 이마를 부딪칠 뻔했다. 가까스로 비켜서기는 했는데 컵라면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오. 미안” 그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주워서 돌아가려는데 그가 앞을 가로막으며 말을 걸었다.

“저기.... 나 너 알아. 정말 미안한데. 나 지금 목말라죽겠거든. 그런데 물 값이 없다. 천 원만 빌려줄래?” 그녀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잠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표정이 너무 목 마른 듯 보였다. 아무 대꾸도 없이 지갑에서 천 원을 꺼내 대신 계산했다.

“너... . 2학년 4반 오민주 맞지. 난 2학년 7반 이동현이야.” 하더니 250ml 작은 물병 하나를 그 자리에서 단번에 마셔버렸다. 500ml, 아니 1000ml였더라도 다 마셨을 것 같았다. 좀 아쉬운 듯 빈 병을 한번 쳐다보고 그녀를 향해 흔들어 보인 다음 쓰레기통에 넣었다.

“고마워. 비상금이 있었는데 다 써 버린 걸 잊었어. 꼭 갚을게.”

그녀는 말이 없어 그냥 서 있었다.

"이따 갚을게" 하며 빙긋 미소를 짓고 나가 버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뒤돌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다. 생돈 천 원을 썼는데도 자신이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작은 사실이 오히려 뿌듯했다. 길 건너 맞은편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알바 하는 편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다른 때보다 가볍다는 것을 느꼈다. 아빠가 해직되면서 시작된 불행은 그녀에게 그림자처럼 쫓아다녔고, 행복은 언제나 멀리 있어 잡을 수 없는 무지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지만 하루하루 삶의 무게를 견뎌내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학교에서 가는 소풍 조차도 꿈 꿀수 없었고, 꾸지도 않았다. 생각을 안 하는 것이 더 편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운 이 느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미친 발걸음이 여전히 사뿐거렸다. 일하는 동안 그녀는 힘 들지 않았다. 네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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