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을 견뎌야 가정을 파탄 내지 않을 수 있다
꾸준히 하는 것이 드물었다.
첫 직장도 금방 그만뒀고, 취미도, 연애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지루했다.
대부분 일에 러닝커브가 존재한다고 믿어왔다. 기본을 익히는 첫 번째 단계,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는 두 번째 단계, 그리고 나만의 업무방식과 노하우가 생기는 세 번째 단계.
문제는 이 세 번째 단계였다. 이쯤 가면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네 번째 단계가 금방 찾아오지 않는다. 업무는 반복되고, 다 배운 것 같은 기분만 든다.
다 배운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나는 떠났다.
그렇게 의미 없이 사람들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기적이라거나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남몰래 소시오패스의 특징들을 알아보고는 소스라치기도 했다.
어쨌든 이제는 학습과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잠수를 타는 것,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 자주 애인을 바꾸는 것, 이직이 잦은 것 등에 대한 더 포괄적인 해석이 가능해졌다.
마냥 '지루한 것을 못 견디는 성향'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호르몬 치료를 통해 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더는 자신을 인간쓰레기라며 자책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괜한 자극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을 두고 전 세계를 이유 없이 떠돌아다닌다거나, 결혼이 주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바람을 피운다거나, 일만 많이 벌려놓고 끝내 지를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참 서글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이 생겼다.
병이라고 인식조차 못했던 병을 자세히 알게 되고, 그것에 대한 치료법까지 존재한다니. 이보다 큰 선물이 어딨겠는가.
물론 ADHD를 가지고 사는 것이 마냥 이기적인 성격과 성적 문란, 가정 파탄만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것들도 참 많은데, 저 위 3가지만 해도 사실 그 좋은 것들을 다 의미 없게 만든다.
만약 세상이 ADHD 맞춤형이라서 이기적이면 칭찬해주고, 이직도 알아서 척척 응원해준다면 그대로 살 마음이 있는데.
세상이 안 그렇다. 어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