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아인슈타인, 리처드 브랜슨...성공 맞나
나는 ADHD 환자이며, 책을 하나 쓸 것이다.
ADHD로써 하나의 책을 완성시킨다는 과제가 얼마나 지겨운 것인지 알 사람들은 알 것이다.
흥미가 사라지면 일을 멈추는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끝낸다는 것은 그것을 아주 오랫동안 사랑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전제를 깔고 가기로 결심했다. 바로 ADHD스럽게 책을 쓰는 것.
정교하게 정리돼 있는 책을 쓰라하면 나는 못할 것이다. 이미 수십 번 실패한 일이다.
그래서 ADHD스럽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일로써 완성을 이뤄보고자 한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
ADHD를 처음 진단 받게 된 것은 놀랍게도 이 책을 쓰고 있는 2021년 여름이다.
여느때보다 예민하고, 짜증나고, 정신없는 하루를 마친 어느날 - 정신과를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던 내 모습에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ADHD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ADHD 환자가 그러하듯 처음에는 불면증,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등 공존질환을 의심했다.
친구들끼리 농담반 진담반으로 ADHD라며 놀려대기는 했지만. 그것이 정신질환일 것이라고 자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도한게 ADHD를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정신이 산만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며, 한번 시작한 일을 끝내지 못하는 성격적인 특징이라고만 생각했다.
미친듯이 하나의 일에 집중하게 될 때면 ADHD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ADHD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단점이 너무 컸다.
어느날은 평범하게 점심을 먹다가 어머니가 말을 걸어왔는데, 갑자기 머리를 긁으며 화를 냈다.
어머니의 말소리가 칠판 긁는 소리마냥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제발 침대에 누워서 아무 말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는 지늘게 밥알을 씹는데 죄책감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언제까지 느려빠진 회전문을 보며 부수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부모님께 짜증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놀랍게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이런 참을성으로도 잘 살아왔다.
어쩌면 그렇지 않았어야 하는데 모든 이상징후를 견디기만 했다.
소수의 편한 사람들에게 짜증을 몰아치거나, 한가지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식으로 나의 분노를 풀어내곤 했다.
사회가 나를 묶어두고 있다는 생각만이 세상을 지배했고, 여타금씩 훌쩍 떠나버리기도 했다.
도저히 좋을 수는 없었던 것이 - 인연을 끊어버린 친구들만 해도 수백 명이었다.
그리고 더욱 불길했던 것은 그것을 내가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ADHD를 치료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양한 취미와 얕고 넓은 성과들을 안겨준 ADHD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기로 결심했다.
ADHD로 이룬 것들
ADHD라고 해서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을 과제로 삼을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을 때, 나는 오히려 특출나다.
대다수 ADHD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다. 한가지 일에 집중하면 밥 한끼 안 먹는 것정도는 일도 아니다. 밤을 새서라도 해내고야 만다.
사사로운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 시작한 글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아마 ADHD 환자도 일반인만큼 크고 다양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예시로써 적합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ADHD 경향이 있었다고 알려진 빌 게이츠, 리처드 브랜슨, 저스틴 팀버레이크. 확실치는 않지만 다빈치,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 등까지 모두 인생으로써 같은 명제를 증명했다.
이들의 성과는 다채롭고, 신선하고, 광적인 노력 끝에 탄생했다. 내연하기 어려운 폭발력으로 세상을 바꾼 이들처럼 - 나도 어쩌면 이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끝없는 무기력과 신선한 자극을 찾으려는 욕구. 호기심과 담대함. 그런 것들이 나를 어쩌면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가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ADHD의 오점 역시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당장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리처드 브랜슨, 아인슈타인 등만 보아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속한 이가 없다.
일에 광적으로 미쳐 사랑하는 이들을 등한시하고, 분노인지 열정일지 모를 화재에 삶을 연소시키며, 그 어떤 제어장치도 갖추지 못한 폭주기관차처럼 달린 이들이다.
이 모든 것이 ADHD때문이라고 일반화해서는 안되겠지만 - 나는 아주 많은 부분 그들과 공감한다.
이대로 계속 살아간다면 나 역시 일에 미치거나, 여자에 미치거나, 도박에 미치거나. 무엇이든 나에게 자극을 주는 것에 미쳐서 주변인들에게 상처를 줄 것이 뻔하다.
부끄럽지는 않지만 나의 아버지의 삶도 그러했다.
나와 가족들을 너무도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 자신의 고독을 견디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리셨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단점을 답습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다. 아버지는 중독에 약하고, 다혈질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담배나 술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입에 대지 않았다. 마약은 물론 초콜릿, 게임, 드라마 같이 중독이 될만한 모든 것들을 차단하며 살기도 했다.
이어 화가 나더라도 무조건 참았다. 학교를 다니며 단 한번도 누군가와 싸우지 않았고, 비둘기 같은 평화주의자로 내 자신을 포장했다.
집중이 어려울 땐 모든 방해요소를 제거했다. 고3때까지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았고, 학교에서는 누워서 눈을 감고 수업을 들었다.
책상 위에 엎드려 눈을 감고 필기하는 내 모습을 다들 놀리기도 했지만 - 돌이켜보면 그것은 교실을 둘러싼 온갖 소음과 방해요소들로부터 나를 지켜준 나름의 전략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까지 알게 모르게 노력했다.
참으면 병 된다
하지만 방해요소를 없애고, 참기만 한다고 모든 것이 나아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나는 내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등생이었고, 착한 아들이자 좋은 친구였지만 이따금씩 분노를 참지 못해 벽에 주먹을 내리꽂고는 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가 아닌 혼자가 됐을 때는 자주 지리멸렬함을 참지 못하고 무기력해졌다.
죽음을 생각하는 빈도가 아주 잦았고, 또래보다 충분히 많은 것들을 해내고 있었음에도 만족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한 두번씩 미끄러지거나, 실수를 할 때면 나를 지나치게 질책해서 마음에 파란 멍이 수두룩했다.
그것이 ADHD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불면증으로 처음 정신과를 찾아갔고, 이후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등을 이유로 약을 처방받아 먹었다.
참으면 병된다더니, 진짜 병이 된 거다.
나는 내 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정신력으로 이겨내면 그만인 줄 알았다. 어릴 적 수없이 돌려봤던 동기부여 영상이나 자서전에 다 그렇게 써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에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고, 모두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슬로건에 미쳐살았던 탓일까. 운 좋게 이뤘던 성취들에 대한 만족감때문일까.
자만심과 우월감으로 치장된 나의 결함은 나조차도 모르게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중독과 자극에 보상을 주는 현 시대와 더불어 말이다.
피로사회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내가 저자 이름과 책 이름을 동시에 외우는 몇 안되는 저서다.
몇 년 전 독일로 논문 연구차 떠났을 때 읽게 된 책인데 주요 내용은 '사람들이 너무 피곤하게 산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자기착취'라는 개념을 많이 인용했는데 어쩌다 그것이 나의 삶이 당착한 모순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이후 1-2년동안은 자기착취를 그만두지 못하다가, 모종의 계기로 모든 일을 내려놓은 순간이 있었다.
당시 나는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되뇌이며 모든 짐을 내려놓고자 1년 가까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일어나서 무한도전을 보고, 빅뱅이론을 보고, 유튜브를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잠에 드는 것이 1년 가까이 반복됐다.
행복했을까? 아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순간들 중 하나였다. 기관차가 달리지 못하고 역사 한켠에 방치되어 있다면 그것은 휴식일까.
집중할 것을 찾지 못하고 짧은 자극들로 세월을 채워넣던 그때의 나는 너무도 어지럽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
얼마나 불행했느냐하면 나보다 불행한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읽지 않으면 하루가 비참해졌다.
무조건 쉬는 것이. 노는 것이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그때는 그렇게 어렵고, 아팠으면서도 몰랐다.
나중에 다시 직장에 취직을 하고 무언가에 열정을 쏟으며 사는 삶을 되찾고나서야 깨달았다.
ADHD에게 피로사회는 필요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