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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기 전에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가면 여행을 새롭게 즐길 수 있다. 여행을 다녀와서 그 지역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가기 전에 보고 가면 여행지에서의 발걸음과 감상이 달라진다. 일본 영화에도 일본 각지의 아름답고 일본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다. 특유의 잔잔한 전개와 철학적인 주제가 가끔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들게 하지만, 은근하게 마음에 남게 되는 일본 영화들.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지만 배경은 익숙하지 않은 일본 영화의 촬영지들을 소개하겠다.
겨울에 가면 딱 좋은 곳, 오타루. 한국인들도 '오겡끼데스까(잘 지내시나요)?'를 외치게 한 <러브레터>는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한국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일본 영화이자 로맨스 영화. 오타루의 시청은 후지이 이츠키(나카야마 미호 분)가 입원했던 병원으로, 텐구산 중턱에 있는 케이블 승강장은 와타나베 히로코(역시 나카야마 미호 분)가 설원에 누웠던 장면에, 제니바코 역 반 테르고씨 부부의 집은 후지이 이츠키의 집으로 나왔었다. 겨울의 추운 겨울과 하얀 눈이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어 준다. 오타루에서 누군가에게 '오겡끼데스까'를 물어보는 것은 어떤가.
제목이 충격적(?)이어서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가 되었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엽기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일본 감성이 녹아든 멜로 영화다. 자극적인(?) 제목에 비해 자극적이지 않은 내용 때문이었는지 국내 관객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벚꽃이 흩날리는 영화 속 배경은 일본 여행 욕구를 제대로 자극한다. 주인공 두 명이 떠나는 곳이 '후쿠오카'이다. 텐진역, 다자이후 텐만구, 힐튼 후쿠오카 시호크 호텔 등 후쿠오카에 가본 사람이라면 어딘가 익숙한 곳들을 많이 봤을 것이다. 가깝게 갈 수 있고 밤도깨비 여행으로도 많이 가는 후쿠오카, 아직 여행 전이라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보고 떠나보자.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신비롭고 궁금한 존재로 남아있는 게이샤를 다룬 <게이샤의 추억>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일본'이 배경이지만 대사는 모두 영어이다. 처음엔 전혀 영어가 어우러지는 느낌이 없어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영화에 빠져들면서 배경이나 기모노, 장쯔이의 외모에 눈이 갔다. 이 영화로 장쯔이는 매국노로 비판을 받았고, 작품 자체도 '오리엔탈리즘' 영화라고(서양인 스필 버그가 만들었기 때문에) 비판을 받았었지만, 게이샤의 세상을 엿보는 것 같은 재미가 있었던 영화다. 영화 속 인력거가 지나가던 아라시야마의 치쿠린, 어린 사유리가 뛰던 후시미이나리의 터널 같은 센본도리이도 교토 여행의 흥미를 더욱 돋아줄 것. 아직도 교토 기온 거리에서는 게이샤를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영화 같은 교토 여행을 해보길 추천한다. (게이샤 체험을 하는 일반인들을 만나는 것도 교토 여행의 재미!)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마주한 언니 세 명과 배다른 동생 스즈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각자 특징이 강한 세 언니의 에피소드와 네 자매의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 영화 제목에서처럼 배경은 바닷마을 '가마쿠라'. 도쿄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어서 일본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자매들이 출근을 하느라 뛰어가던 고쿠라쿠지 역, 네 자매들이 잔멸치덮밥(시라스동)을 맛있게 먹었던 분사 식당,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온 시치리가하마 해변 등 그리 크지 않은 가마쿠라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나온 장소를 찾아 잔잔하게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바쁘게 움직여 주요 관광지를 간다는 여행이나 먹방을 찍고 오는 여행을 하기보다 느긋하게 영화를 곱씹고 힐링을 하고 싶다면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촬영지 가마쿠라를 추천한다.
<러브레터>의 '오겡끼데스까'에 이어 '키미노나마에와?'로 한국인들에게 확실하게 일본어를 알려준 <너의 이름은>. 타키가 살고 있는 곳은 도쿄이고 미츠하가 살고 있는 곳은 이토모리 마을이다. 이토모리는 실존하는 곳은 아니고 히다 후루카와를 그대로 옮겨 그린 곳이다. 소소하게는 논밭길, 건널목, 후루카와 역 앞 택시 정류장 등을 <너의 이름은>의 장면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고, 미츠야가 있던 미즈미야 신사의 배경이 된 케타와카미야 신사와 히에 신사, 타키가 정보를 찾던 히다시 도서관을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실제 히다 후루카와는 우리나라 산골 동네처럼 영화관에 가기가 힘들어 마을 사람들은 <너의 이름은>의 배경이 되었는지도 잘 모른다고 하는 조용한 마을이다. 몸이 바뀌고 시간이 넘나드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판타지적 요소와 풋풋하고 아련한 사랑이 담긴 <너의 이름은>을 떠올리며 히다 후루카와를 방문해보는 것도 좋겠다.
밤이 되면 화려하게 빛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목욕탕은 대만의 지우펀을 보고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우펀의 화려한 홍등을 보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생각나게 된다. 지우펀뿐만 아니라 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곳이 있으니 군마현의 시마 온천이다. 시마온천으로 들어가는 다리는 치히로가 하쿠를 따라 숨을 참고 건너던 다리와 닮았다. 지우펀 같은 화려함은 없지만 몇 백 년이 되었다는 건물을 들어가다보면 신이 목욕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 일본의 새로운 온천 여행지를 찾고 있다면 시마 온천을 추천한다.
비의 계절이면 돌아온다던 미오. 정말로 장마가 시작하며 돌아왔지만 전혀 남편 타쿠미와 아들 유우지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며 6주의 시간을 보내고 떠나간다. 6주 간 함께 했던 미오는 사실 미오가 20살 때 타쿠미를 쫓아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으로 있으면서 타임슬립한 것이었다. 본인의 미래를 알면서도 타쿠미와의 사랑을 선택했던 미오와 그들의 가슴 저릿한 사랑을 볼 수 있는 영화.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타쿠미를 찾아가는 미오. 미오와 타쿠미가 만나 사랑을 다시 확인하는 장면이자 포스터의 장면인 해바라기 밭은 야마나시현 호쿠토시에 있는 '아케노 히마와리바타케'에 있다. 일본의 알프스 산맥이 보이고 7-8월이면 선플라워 페스티벌도 진행되는 드넓은 해바라기 밭이다. 가슴 아픈 사랑은 쉽게 선택하지 못하더라도 올 여름 여행지는 아케노로 정해보는 것이 어떤가.
유명한 작품들 위주로 오래된 명작과 최신작을 넣어보았다. 교토, 후쿠오카는 흔한 여행지이지만, 가마쿠라나 후루카와 등은 영화 배경이 되지 않았더라면 쉽게 알지 못했을 곳들이다. 글을 쓰다보니 봤던 영화도 다시금 보고 싶고, 계획하고 있는 일본 여행에 넣고 싶은 여행지도 많이 생겼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지만 깊이 있는 일본 감성을 일본 여행에서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서는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기억하고 간다. 백 번을 가면 백 번을 다르게 여행할 수 있는 일본 여행, 이번에는 좋아하는 작품의 배경을 따라가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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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공 : 객원작가 송지수(songjs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