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레이 Aug 22. 2019

분노에 대하여

나를 웃고, 울게 만들었던 그 감정들


당신이 가진 분노,
그 존재의 이유를 아는가?
분노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분노하지 못하는 대중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나에게 분노는 무엇일까,
나의 분노는 어디에서 왔을까,
나의 분노에 이름을 붙여주어 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 구문처럼
우리 감정도 정의 내리고 보듬어주어야 가치 있는, 소중한 것이 되지 않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분한 일이 생기면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울어야 직성이 풀렸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내 안의 악마'가 나왔다며 장난을 치셨다.

'악마'라고 하니 자연히 분노는 멀리해야 하는 감정이 됐고, 분노하지 않고 화를 다스리는 것이 좋은 것이라 여기며 오랜 시간 동안 내 안의 분노를 부인하며 살아왔다.


너무 억울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에도, 그것을 눌러야 하는 마음과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배우지 못해 삭히는 수 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심지어 그것이 잘못된 외부 환경에 대한 분노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분노 표출 억제가 겉으로 악마를 부르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대신 내 안에서 폭군이 되어 상처 주고 아프레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분노를 표출하지 못해 삭히기만 하던 내게 변화가 찾아온 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데 솔직한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부터다.

아내는 내가 무작정 참고 삭히기보다는 '목소리'를 내길 원했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분노를 말로써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분노라는 감정이 늘 더럽고 추악한 감정인 것만은 아니며. 때로는 나의 권리와 에고가 타자에 의해 공격당할 때 너를 대변하기 위해 생긴다는 걸 알게 됐다. 분노가 나를 지켜주는 역할도 하고 있던 것이다.

글을 적으며 다시 한번 분노의 감정을 떠올려본다.

나는 언제 분노했지? 왜 분노했을까? 꼭 분노해야만 했나? 분노해서  좋았던 게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꼭 분노가 나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때때로는 나를 지켜주어 고맙다, 나의 분노, 나의 헐크

매거진의 이전글 더 많은 감동을 주고, 더 자주 감동을 받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