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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레이 Sep 24. 2019

용기와 두려움

나를 울고, 웃게 했던 그 감정들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라는 말처럼, 두려움이 없는 건 거짓말이다.

두려움은 왜 생기는 걸까 라는 질문은 그래서 질문 자체가 오류다.

두려움이 언제 생기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대로 된 것이지.



1. 겁쟁이

내가 생각하는 두려움은 선택에 대한 기회비용이 만들어내는 감정이다.

선택 후, 찾아오는 수많은 감정 중 두려움/용기는 서로 n극과 S극처럼 연결되어 있는데,

선택이 줄 수 있는 기회비용과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선택하고 행동한다면 용기>두려움인 것이다.

선택도 행동도 하지 못한다는 건 용기<두려움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겁쟁이가 겁이 많은 찌질이가 아니라, 잃고 싶지 않은 것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 그게 겁쟁이라고..? 음… 맞다. 이건 사실 내 세련된 자기 합리화였다.



2. 원기옥

아무 때나 쉽게 얻을 수 없는 ‘용기 있는 선택’은 안정적인 현 상황, 잃을 것이 있는 걸 놓아버리고, 박차고 나오는 것이다. 용기란 삶이나 어떤 순간에 급 브레이크를 발고 U-Turn을 해서 방향을 바꿔버리는 과감성, 급진성이다. 하지만 매번 유턴하고 멈추고, 나가버릴 순 없지

그래서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을 가려낼 눈과 그 순간 터뜨릴 수 있도록 용기를 충분히 모아둬야 한다.

뭐 나도 원기옥을 터뜨린 적이 몇 번 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던 순간, 복학 대신 토익 대신 어학연수 대신 혼자 영어를 공부했던 순간, 안정적으로 다니던 회사를 나오던 순간(그다음 해 역대 최대 매출과 함께 내려온 PS를 부러워하지 않지 않지 않았다)

그 원기옥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 했을 거다. 그때 그 순간의 원기옥에 고맙다.

지금은 아직 원기옥으로 쓸 만한 용기는 없다.



3. 용기를 모아 놓는 법/순간포착

낄끼빠바,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란 말이다. 말처럼 쉽지는 않다. 나도 어려워 자주 선을 넘는다. 다만 어떻게 해야 낄끼빠빠할 수 있는지는 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으니…)

바로 ‘나’의 현재 위치(상황)를 아는 것이다.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을 포착해 용기를 내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 선택/결정/실행이 가진 ‘의미’를 알아야 한다. 아주 잘,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아야 한다. 아주 잘,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아야 한다.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확신’에 가까운 것, 나는 그게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낼 순간을 포착하는 눈이 되고, 방향을 틀어 U-Turn 할 수 있는 원기옥 같은 용감함이 된다고 믿는다.





다 쓰고 보니, 나는 용감한 사람은 아닌 거 같다. 대신 이론만 빠삭한 이론 박사 스타일이다.

그래도 삶에서 2-3번 용기를 낸 적이 있으니, 용감했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으려나.

뭔가 참전 용사 스타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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