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최선을 다하는 것
1. 승부욕 없는 사람
어려서부터 승부욕이 강한 편이 아니었다. 물론 승자와 패자 중에 선택할 수 있다면 승자를 택했지만, 그게 곧 어떻게든 상대를 눌러 승자가 되야겠다는 건 아니었다. 좋은 게 좋은 거고, 기왕이면 이기는 쪽을 선택하겠다는 마인드였다. 그런 나의 면모는 운동경기나, 공부 같은 등수 매기기 종목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다.
한 번은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여학생을 좋아했던 적이 있다. 까불거림과 장난으로는 전교에서 놀던 내가 1년 동안 말도 못 걸 정도로 풋풋한 좋아함이었는데, 졸업을 앞두고 풋사랑이 빨갛게 익을 때쯤 좋아한다고 고백할 시기만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가장 친했던 친구(초등학생 때부터 선배 누나, 동갑, 다른 학교 친구까지 다양하게 사귀었던 P군)에게 갑작스레 나와 같은 여학생을 좋아한다고 밝히는 게 아닌가...!?
'넌 그동안 맨날 여자 친구 바뀌었잖아!'라고 외치고도 싶었지만, 나는 과감하게 내 마음을 접기로 했다. 친구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경쟁해야 한다니!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니! 승자도 패자도 아닌, 관찰자가 되는 게 몸도 마음도 편했다. (PS. 그 여학생에게 고백 후, 거절당한 P군에게 한참 후에 말해준 그녀의 거절은 '나를 좋아해서 싫다'였다니. 없던 승부욕이 조금 안타까웠다)
다른 한 번은 고등학교 반장선거 때였다. 학생부 전형이 강화되면서 반장/회장 등의 직책이 중요해졌던 나의 고등학생 시절, 반장 선거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전교권에서 까불거림을 날리고 있었던 나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 그러다 짝꿍의 추천으로 최종 투표까지 올라갔다. 하고 싶지도 않은 감투를 쓰라는 친구들도 이상했지만, "나 꼭 반장 해야 해"라며 자기 자신을 강력 추천하던 임시 반장 S양의 눈빛은 더더욱 이상했다. 더욱이 그 친구를 이기면서까지 반장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는 "반장은 꼭 하고 싶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라고 외치며, S를 추천했고, 소중한 1표를 그 친구에게 행사했다. 결과는 1표 차이로 S의 승리!
하고 싶은 마음도 없거니와 승부에 있어 욕심이 없던 나는 그렇게 부반장이 되었다. 이것도 승부욕 없던 나의 에피소드 중 하나다.
2. 서른 하나
약했던 승부욕에 변화가 생긴 건, 인생에 발생하는 사건에 대한 '태도'가 바뀐 이후부터다.
스물 하나, 군에 입대했다. 입대 후 생기는 멍 때릴 시간마다 사회인으로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봤다.
잘한 일보다 후회되는 일들이 훨씬 많았다. 기회가 없거나, 상황이 불공평한 건 아니었다. 그저 그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내가 있었을 뿐이었다.
바뀌고 싶었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갑자기 부족한 능력을 따라잡을 수도, 군생활을 바꿀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 바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나의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더 이상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안 될 이유를 찾지 않았다. 대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기 전에 결과를 지레짐작하는 대신 '안 되면 되게끔', 그것도 아니면 '후회가 남지 않게' 끝까지 온 힘을 다 쏟았다.
'끝까지 다하는 것. 그렇다고 주어진 시간 안에서 있는 힘껏, 성심성의껏 온 힘을 쏟는 것'
내가 서른 하나에 정의 내린 '최선'이다.
짧은 시간 동안 준비하느라 부족했던 한국사 시험에서도,
원하는 스타트업 입사를 준비하다가 급하게 대기업 최종면접에 게 되었을 때도,
철인 3종 대회에 나가 다리에 쥐가 나고 탈수증이 와도,
나는 내가 가진 지식과 열정과 에너지를 긁어모아 모조리 쏟아냈다. 마치고 몸살이 나 며칠을 앓아눕기도 하고, 현타가 찾아와 고뇌에 잠기기도 했지만 언제나 후회는 남기지 않았다.
직장인이 된 지금도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힘들고 지쳐도 태도만큼은 흐트러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채근한다.
다른 사람은 부족한 결과물에 "이게 최선인가요?"라고 물을 수도,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고만하고 행동할 것이다. 그러니 내게 최선의 유무를 묻지는 말길. 난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3. 마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흔(불혹)'의 나는 어떨까. 마흔의 나는 눈가에 주름은 늘 거고, 새치도 생기고,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더 무겁게 책임을 느끼는 직장인이 되어있을 거다.
만약 내가 한 가지만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고 싶다.
남보다 앞서가고, 남보다 빨리 가기보다는 조금 느리더라도 함께 가는 사람이면 좋겠다. 어떤 일을 만나도 포기하고 설렁설렁하지 않고,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고 싶다.
의지가 약해서 꾸준하지 못해도, 준비성이 없고 시간이 없어서 완벽하지 않더라도 끝까지 자리에 앉아 시간을 꽉 채우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내는 사람이고 싶다.
마흔의 나는 그런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면 한다.
2019년 9월 25일,
최선을 다하는 것
서른하나, 그리고 마흔 <친구(九)사이>
우리는 매일 글을 써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