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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레이 May 24. 2021

이름이뭐예요?

어쩌면 나는 햄버거 가게 사장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알아가는 단계에서 이름을 알게 되는 건 꽤나 중요한 스탭이다. 특히 부캐나 SNS 채널이 다양해진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이제는 '이름'도 완전한 개인정보의 영역이 되어버린 거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 주장은 이렇다. 일단 이름을 자의로 정한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하긴 대부분은 자의가 아닌 타의(낳아주신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작명소 선생님까지)에 의해 정해진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름 안에 담긴 뜻도 그렇다. 실제 당사자가 바라는 삶의 방향과 전혀 다른 의미가 담겨있을지 모른다. 난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어른들은 세상에 큰 목소리를 내라며 '확성기'라는 이름을 지어줄 수도 있고, 반대로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어른들은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이 되라며 '소심이'라는 이름을 지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름이 정말 매우 많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여기저기 흩뿌려진 관념과 감각들을 하나로 묶어 무형의 대상에게 구체적인 '상(像)'을 만들어준다.

'상(像)' : 눈에 보이거나 마음에 그려지는 사물의 형체.


'A'라는 제품 또는 사람에 대한 파편화된 이미지, 음성, 촉각, 냄새 등의 묘사로만 접하다가 실물과 이름을 함께 보는 순간... 마치 안갯속을 걷다가 안개가 걷히고 난 후에 느껴지는 뻥 뚫리는 속 시원함이 좋다.

이름의 또 다른 역할은 '저장고'다. 마치 졸업앨범을 펼쳐보듯이 하나의 이름 안에 파편화된 정보들을 잔뜩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인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이름 하나에서 빨간색, 애플, 스티브 잡스, 크리에이티브, 과일 등의 다양한 정보들이 저장되어있고, 때에 따라 하나씩 인출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름을 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 알겠고, 그래서 네 이름이 뭔데?'

내 이름은 레이다.

초등학교 3학년, 영어학원에 새로 온 원어민 선생님은 부임과 동시에 학생들에게 '영어 이름'을 지어오라는 숙제를 내줬다. (생각해보면 본인이 한글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서 내준 숙제 같기도 한데... 일단 패스)


일주일 후, 끝끝내 본인의 이름을 정하지 못한 친구들은 대충 선생님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들이 매칭 됐다. 나 역시 이름을 정해오지 못했지만 고집스럽게 직접 짓겠다며 일주일의 시간을 더 달라고 떼를 썼다. (사실 선생님이 후보로 정해준 이름들 '피터, 마이클' 이 별로였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일주일 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영어 이름들을 찾았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것처럼 보이는 어른들에게 무작정 찾아가 여쭤보기도 하고, 디즈니 속 주인공의 이름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 신문기사 한 꼭지를 읽게 됐다.




맥도널드 CEO 레이 크록의 신년사

기사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음식인 햄버거를 파는 맥도널드의 대표의 이름이 '레이'라는 것만은 잊히지 않는다. 그 순간 그 이름과 사랑에 빠졌다. 마치 짜장면을 좋아해서 중국집 사장이 장래희망인 아이처럼, 그 이름을 쓰면 언젠가 햄버거 회사 CEO가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 이름은 '레이'가 되었다. 그때부터 영어 이름이 필요했던 모든 곳에서 나는 '레이'라는 이름을 썼고, 닉네임을 쓰는 지금 회사에서도 '레이'로 불리고 있다.


고작 이름 하나 설명하는데 이렇게 말이 많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름을 안다는 건' 때론 매우 중요한 일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작고 사소한 것도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면, 중요한 것이 되기도 하기에 애지중지 아끼는 마음으로 이름을 소개해봤다.






안녕하세요, 이제야 제대로 인사드립니다. 
제 이름은... 레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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