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진짜 축구싶냐?》
첫사랑은 특별하다.
처음 경험하는 설렘은 풋풋함, 스릴, 열정 등과 뭉쳐져 2~3배는 더 큰 의미가 된다. 단지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얻는 엄청난 어드밴티지다. 축구선수도 마찬가지다. 처음으로 좋아한 축구선수는 첫사랑만큼이나 중요하다. 평생 사랑 없이 살 수는 없는 것처럼, 축구 없이도 살 수 없을 테니까.
30년을 살면서 내가 좋아한 첫 번째 축구선수는 누구일까? 나는 왜 그 선수를 좋아하게 된 걸까?
내가 좋아한 첫 번째 축구선수는 날쌘돌이 서정원이었다. 날쌘돌이 서정원은 축구를 잘했고, 잘생겼었다. 웃을 때 생기는 눈주름은 우리 집 남자들의 것과 비슷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가 나와 같은 '성'을 가진 축구선수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서 씨 중에 유명한 사람은 서세원, 서승만 같은 개그맨뿐이었다. 그나마 유일한 희망이던 서태지의 본명이 '정현철'이라는 사실은 서태지와 이지아의 결혼, 이혼 소식보다도 더 큰 충격이었다.
서정원은 그런 내게 단순히 좋아하는 선수를 너머 희망을 주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뛰어난 실력에 잘생긴 외모, 그리고 서 씨 성을 가진 축구선수라니... 완벽했다.
나는 축구를 좋아한 만큼이나 날쌘돌이 서정원의 열렬한 '빠'로 성장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 일본과 숙명의 한일전에서 서정원이 동점골을 터뜨렸을 때는 "서정원 꼬오오오올!!!"을 외치며 아파트를 달렸고. 동네에서 축구할 때면 단짝 친구였던 용균이와 서정원&황선홍이 되어 "황금콤비! 날쌘돌이 서정원! 황새 황선홍!"을 외치며 슛과 패스를 아끼지 않았다.
서정원이 프랑스에서 2년을 뛰고 다시 K리그 수원 삼성으로 돌아왔을 땐 그를 따라 수원 블루윙즈가 됐다. 시간이 많이 흘러 서정원이 은퇴하고 K리그는 잘 챙겨보지 않게 되었지만, 다시 수원에 돌아와 감독이 되고 나서는 경기 결과와 인터뷰만큼은 놓치지 않고 챙겨봤다. 그가 다시 수원을 떠났을 때는 나도 함께 떠났다.
그러고 보면 좋아하는 데는 별 이유가 필요 없는 것 같다. 내가 서 씨라는 이유만으로 강렬하게 서정원에게 빠져들었던 것처럼, 때로 우리는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 사랑에 빠지곤 한다. 생각해보면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이유 없이 좋은 것들이 그렇다.
첫사랑은 또 어떤가. 그 단어만으로 존재감을 발휘하는 데다, 우리 인생에서 '처음'을 차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일상에서, 기억에서 의미를 갖는다. 내게 축구선수 서정원이 그렇다. 그래서 날쌘돌이 서정원은 예전에도, 지금도, 아마 나중에도 내게 완벽한 축구선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