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진짜 축구 싶냐?》
우리는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어른이 되니, 친구 사귀는 게 쉽지 않다. 서로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 사는 곳도 다르고 관심사도 너무 다르다. 머리가 커져서 그런지 몰라도 하나가 맞아도 나머지가 달라 가까워지기 쉽지 않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친구 만드는 어려움을 알게 되고, 개인화되어가는 과정인가 싶다. 새삼 그동안 만난 친구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학창 시절 친구들의 9할은 축구가 맺어준 인연이다. 지금이라면 친구가 되기 어려웠을 텐데 그때는 축구를 좋아하고, 함께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아주 쉽게 친구가 됐다. 축구가 뭐라고, 그렇게 절대적인 우정의 오작교가 되어줬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초중고등학교 내내 반에서 까불이를 담당했던 나는 축구를 좋아했고, 가끔 우리 학교에 남학생이 전학이라도 오는 날이면 득달같이 달려가 "너 축구 좋아해? 축구할래? 어디 살아?"를 묻는 아이였다. 누가 묻지도 따지지도,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는데 전학생의 버디 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한 번은 서울에서 '석민'이라는 친구가 전학을 왔다. 수줍음도 많고, 낯가림도 심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나서기 좋아했던 나는 그 녀석이 싫어하건 말건 '선생님, 짝 좀 바꿔주세요!"를 외치고 옆자리에 앉아서는 축구는 좋아하는지, 포지션은 어딘지, 좋아하는 축구선수는 누군지, 좋아하는 팀은 어디인지 쉴 새 없이 물으며 점심시간도 전에 호구조사, 아니 축구조사를 마쳤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바로 운동장으로 끌고 나가 함께 축구를 하면서 친구가 되었음을 선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신기한 놈일세?'라고 하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랬다. 앞뒤 재지 않고 순수하게 축구와 친구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며칠 후, (어쩌면 혼자) 친해졌다고 생각한 나는 다짜고짜 녀석의 집으로 찾아가서 케이크와 우유를 얻어먹으며 같이 컴퓨터 게임을 했다. 당황하며 놀라던 친구 얼굴에 대고, "서울에는 이런 친구 없지?"라고 웃으며 집으로 쳐들어갔던 해맑음이 떠오른다. 다행히 우리는 잘 맞았고, 이후 10대 시절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한 베스트 프랜드가 되었다. 지금도 만나면 우리는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하곤 한다.
우린 어떻게 그렇게 빠르고 쉽게 친해질 수 있었을까? 축구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지금처럼 가까워질 수 있었을까?
축구도 고맙고, 막무가내였던 나를 잘 받아준 석민이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