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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레이 Sep 19. 2021

집 번호를 외운다는 것은

《너 진짜 축구싶냐?》

안녕하세요, 저 진구 친구 승원인데요. 진구 있어요?

학창 시절 가장 많이 뱉었던 문장이다. 

평일 방과 후, 금요일 밤, 주말 낮이면 같이 축구할 인원을 모으기 위해 전화를 돌렸다. 

'진구, 정우, 석민, 관호, 태영, 석진, 신봉, 진혁, 학준, 두호, 재홍, 일준, 제빈, 현관, 충빈...'

시합을 위해서는 주전 선수 11명에 교체 선수 2명까지 최소 13명은 필요했기에 끊임없이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차라리 농구를 좋아할걸... 그랬다면 이렇게 인원 모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전화비도 덜 나왔을 텐데.'

물론 생각에만 그쳤지만.


매주 순서는 바뀌었지만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어김없이 전화를 돌렸다. 3년 넘게 전화를 걸다 보니 15년이 지난 지금도 031로 시작하는 친구들 집 번호가 생생히 기억난다. 아라비아 숫자가 아니라 손가락 움직임으로 기억하는 것들이다.


축구 덕분에 의도치 않게 생긴 습관은 또 있다.  바로 전화 예절.

"안녕하세요, 저 00 친구 승원인데요. 00 있어요?"

이 패턴은 그때부터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도 잘 써먹고 있다. 

또 친구 어머님들과의 잦은 통화로 단련되어 지금도 부모님, 할머니에게 별 어려움 없이 매일같이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 이 또한 축구로 새겨진 좋은 습관이다.


물론 10년도 더 지난 지금은 친구들에게 전화하는 게 그때처럼 쉽지만은 않다. 

'혹시 전화번호가 바뀌었으면 어쩌지?'

'내 전화가 불편하지는 않을까?'

'돈 좀 꿔달라는 소리로 오해하면 어쩌지'

와 같은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오랫동안 함께 축구를 하지 못해서 일까, 아니면 전화번호 앞자리가 031에서 010으로 바뀌면서 통화보다 메시지가 더 편해진 탓일까?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때 생각이나 친구들이 보고 싶다. 함께 수돗물을 마시면서 축구로 울고 웃던 놈들.


다들 잘 살고 있을까? 여전히 축구를 하고 있을까? 오랜만에 휴대폰이 아닌 집 번호로 전화를 걸어 친구들을 불러내고 싶다.

"안녕하세요, 진구 친구 승원인데요, 잘 지내셨죠? 진구 있나요? 아 맞다, 진구 결혼했죠ㅎㅎ
그럼요~ 저도 잘 지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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