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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레이 Feb 14. 2018

'해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

마흔네 번째 이야기

#20180213 
우리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다보면 벽에 부딪히게 된다. 


매일 영어를 5시간씩 공부해도, 말은 금방 터지지 않고, 
매일 운동을 2시간씩 꾸준히 해도, 몸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변화가 없을 때. 
그때가 바로 우리가 '벽'을 만난 순간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벽을 만나면 다음과 같이 움직인다. 
1. 일단 벽을 발로 차고, 밀어본다. 
2. 벽 앞에서 소리를 쳐본다. 
3. 벽 앞에서 x욕을 한다. 
4. 벽을 기어 올라가려고 시도해본다. 
5. 몇 번 실패하다가, 다시 x욕을 하며, 발로 차고, 밀고, 소리친다. 
6. 왔던 길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드는 생각은 딱 하나다. 
'아 여긴 절벽(혹은 막다른 골목)이었어' 


"그런데 정말 그 벽이 절벽이나 막다른 골목이었을까?" 




예전에 한 책에서 감명 깊게 읽었던 구절이다. 

천 길 벼랑 끝 100미터 전. 하느님이 날 밀어내신다. 나를 긴장시키려고 그러시나? 
10미터 전. 계속 밀어내신다. 이제 곧 그만두시겠지. 
1미터 전.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을 거야.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모든 물질과 상태의 변화는 곡선의 그래프를 띈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구간의 지루함을 이겨내면, 그 너머에 크고 작은 변화가 찾아온다. 

마치 99.99도까지 올라가야 물이 끓는 것처럼. 
우리의 성장도 기나긴 지루한 구간이 이어진다. 

우리는 그 구간을 '벽'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래서 벽은 절벽도, 막다른 골목도 아니다. 


벽은 끓는 점 바로 아래, 99.9도이고, 
내가 알지 못 했던 나의 '날개'를 만나는지 지점이다.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것만 같다면, 
이 점을 기억하자. 
우리는 지금 99.9도 앞에 서 있다고. 

"해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라는 말처럼, 
나는 지금 떠오르는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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