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위해 눈물 흘려준 사람

노랫가사에나 나올 법한 '날 위해 눈물을 흘려준 사람'


저는 두 명 있습니다.

한 번은 고등학교 3학년 수능 끝나고 겨울방학 때 호프집에서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손님과 마찰이 있었는데 사장에게 끌려가서 혼쭐이 났습니다.

그때가 처음으로 누군가가 날 위해 울어준 날이었습니다.

내 잘못도 아닌데 그냥 억울하게 듣고만 있는 내 모습이 친구 눈에는 눈물이 날 정도로 억울했나 봅니다.

친구의 급작스런 눈물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꼭 빼닮은 아들을 둘이나 둔 그 녀석과는 20여 년이 다 되도록 여전히 친구입니다.


몇 해 전 소개를 통해 어느 대학 심리학과 교수님의 행동심리(?) 실습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전영화에서나 보던 모습을 직접 해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이라 생각하고 걸어라

사람과 부딪히면 부딪히는 대로 바람에 휩쓸리면 휩쓸리는 대로

큰 강당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팔을 축 내린 채 이리저리 걸어 다녔습니다.


그리곤 롤 플레이를 했습니다.

저희 팀은 제 어린 시절의 모습을 꾸며내는 것이었습니다.

전 어머니 역할, 한 남자는 아버지 역할 그리고 한 여자는 제 역할

어린 시절의 제 모습을 다른 사람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부분에서 전 어머니의 역할을 하며 어린 시절의 저에게 잔소리와 역정을 내어보았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저는 장남, 장손이었습니다.
장손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말 그대로 독차지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든 사랑은 모두 다 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남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랑과 관심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1등 실력이 아님에도 최소한 3등 4등은 되어야 하는 기대, 그 기대엔 거의 못 미쳤습니다.
10등 안팎에서 왔다 갔다 했던 것 같습니다.
10등 안에 들기라도 하면 온갖 칭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땐 전교 1등 하는 동생들과의 비교가 시작되었습니다.
형이라는 게... 오빠라는 게...

한국에서 장남으로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나름 규모가 있는 암산 대회에서 2등을 했습니다. 정말 최고였죠
2등 상을 탄 기쁨은 채 1분도 못 갔습니다.
1등을 남동생이 했거든요.
'동생이 1등 했데' 와 '동생이 1등이고 형이 2등이래'는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했던 것 같습니다.
형으로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이런 기억들을 생각해내며 그때 내가 들었다고 기억하는 말, 느꼈다고 생각하는 감정들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짧은 롤플레이가 끝났습니다.


교수님께서 무대로 올라오셨습니다.

그리곤 관객석을 훑어보곤 앞자리에 있는 한 여학생에게 '어떻게 봤냐'고 물었습니다.

조명 때문에 그 여학생을 똑바로 보진 못했습니다.

저 역시 공연은 끝났고 좀 멍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웁니다. 그 여학생이 갑자기 웁니다.

소리 내어 웁니다.


전... 여전히 멍합니다. 당황스럽지도 않고 이상하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고.. 그냥 서 있었습니다.

우는구나....

내 모습이, 내 어린 시절이 아니면 내 어머니의 젊은 시절이

그 여학생을 울렸나 봅니다.


펑펑 울던 학생이 이제야 울음을 그칩니다.

교수님께서 울음을 그친 그 여학생이 아닌

저를 보며 '이젠 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젠 됐다


날 위해 울어준 두 번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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