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유는 처음이라
초벌을 기다린 지 한 달이 됐을 때 반가운 연락이 왔다.
“맡기신 도자기 초벌이 완료 돼 연락드립니다. 지난번에 시유 직접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언제가 괜찮으세요?”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설레는 포인트가 몇 개가 있다. 그 중 초벌과 재벌이 완료됐다는 말은 심장은 두근거리게 한다. 내가 빚은 도자기와의 첫 만남에서 오는 설렘 한 스푼, 시유를 직접 해볼 수 있다는 설렘 한 스푼에 밤잠을 설쳤다. 사실 첫 시유를 하는 날이 컴퓨터 활용 능력시험 실기시험이 있던 날이었는데, 이렇게 설렘으로 시험을 기다려본 적은 처음이었다.
시유는 처음이었다.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재미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시유하는 내 모습을 다시 그려보고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다음에는 이런 부분을 더 신경써보자는 생각으로 가득했을 정도로.
퐁당 유약에 빠뜨렸다가 하나, 둘, 셋. 세 바퀴를 돌리고 올리면 된다. 첫 시도는 나쁘지 않았다. 웃기게도 두 번, 세 번째는 세 바퀴 반을 돌려서 탈탈 터는데 손목의 각도가 참 이상했다. 웃음이 났다. 당황스럽지만 차분히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었던 인자한 선생님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크게 웃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럼 덜 민망할 것 같기도 하거든요. 1차 가마를 기다리는데 한 달이 걸렸지만 시유 작업은 2시간 만에 끝났다. 왜 재미있는 건 훅- 하고 지나가는지. 이건 분명 시계 뒤에서 쳇바퀴 돌리는 햄스터가 신나서 더 빠르게 돌리는 걸지도 모른다. 햄스터 이녀석! 반대로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시간이 짧게 느껴져서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다. 2시간이 20분처럼 느껴져서 '와- 나 진짜 즐겼네?' 하는 거지, 하기 싫은 거 할 때 처럼 2시간이 3시간 처럼 느껴지면 과연 재미있을까.
컴활 실기를 가뿐하게 보고 시유를 하러 가는 발걸음은 깃털마냥 가벼웠다. 내가 좋아할 걸 알아서. 좋아하는 걸 좋아하러 가는 길이라서. 첫 시유의 기억은 무지개 빛깔로 예쁘게 그려졌다. 뭔가 몸 안에서 에너지가 뿜뿜하는 기분이었다. 한 달 동안 일을 쉬면서 자소서 쓰고 자격증 시험 보려고 공부만 하다 보니 창작의 에너지가 다 사라져 있었는데 다시 피어올랐다. 친구와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창작의 에너지, 꿈을 향한 에너지가 사라지게 두면 안 된다고. 반복된 일상에 치여, 무료함과 피곤함에 잠식돼 사라져 버리는 그 에너지의 끝을 어떻게든 붙잡아야 한다고. 아마 내게 그런 하루였던 것 같다. 되는 일은 없고 하얀 방 안에 유일하게 검은색 점이 된 기분이었는데.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를 모르겠는, 좌표를 잃어버린 순간 밤하늘에 빛나는 북두칠성 같은 반짝임이었다고 할까. 꿈을 잃어버렸다고 나를 잃어버린 게 아닌데, 꿈을 잃어버린 순간 나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사실 꿈을 잃어버렸다고 하기 보다 그냥 그 길이 더 이상 내게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고 해야 하는 게 맞겠지.
나: 혹시 제가 시유해도 되나요?
선생님: 네, 가능하죠.
나: 시유는 처음인데 잘 할 수 있겠죠?
선생님: 네, 별로 어렵지 않아요.
내가 아는 시유의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담금 시유, 붓질 시유, 분사 시유. 이번에 내가 해 본 것은 담금 시유. 퐁당 빠뜨렸다가 1초, 2초, 3초 마음의 시간을 세고 꺼내는 것.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 쉽지만은 않았다. 눈물 자국이 안 생기게 하고 싶었는데 죄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표면을 매끄럽게 만드는 과정에서 유약이 벗겨지기도 했다. 시유 집게를 사용하는 것도 어색했다. 힘을 어느 정도 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퐁당 담궜다가 도자기가 유약 사이로 헤엄쳐 나가면 어떡하지 걱정도 됐다. 근데 이미 하겠다고 마음먹은 거 못해도 그만인거 아닌가 싶다.
나: 하하하. 손이 왜 이러죠? 처음에는 잘 됐는데.
선생님: 그러게요. ㅎㅎㅎ(미소 지으며)
나: 너무 웃기네요. 하하하.
다음 시유가 기대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