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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범 Aug 24. 2020

여러분 나처럼 살지 마세요

여러분은 퇴근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당신은 퇴근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아니 질문이 잘못된 것 같다.  

당신은 퇴근 후 자신만의 생활을 가질 수 있습니까? 

당신은 퇴근 후 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아마 퇴근이나 제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질문을 해보겠다. 

당신은 정시 퇴근을 하게 되었다.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바로 대답이 나오지 못한다면 당신은 취미나 여가생활에 익숙지 않는 것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퇴근 후, 갑자기 시간이 생기면 어떻게 사용할 줄 몰라 술을 마시러 가서 회사 욕을 안주 삼거나 집에 바로 가서 TV를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할 것이다.


내가 신입사원 교육 담당자였을 때였다. 

대부분의 신입사원 교육은 수료식을 진행한다. 그리고 수료식 때는 그 교육 책임자분들이 나오셔서 일종의 훈화 말씀을 하신다. 나도 그 당시 나의 직속 상사인 교육 팀장님을  항상 섭외하여 '당부의 말씀' 이란 시간으로 수료식을 마무리하였다. 

(난 교육담당자로서 이런 천편일률적이고 재미없는 수료식이 싫어서 클럽에서 파티의 형태로 진행하자는 의견을 냈다가 된서리를 당한 적이 있었다.)


수차례의 수료식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대부분의  팀장님의 레퍼토리는 비슷하였다. 회사에 입사해 주셔서 감사하고, 훌륭하게 성장하여 회사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어 달라 라는 식의 이야기였다. 아마 그분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해, 팀장님은 암 판정을 받게 되었다. 다행히 매우 초기여서 수술로 치료가 될 수 있었지만, 나를 포함한 팀원들은 충격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팀장님은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현업에 큰 공백 없이 복귀하실 수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신입사원들이 교육이 끝나고, '당부의 말씀' 시간이 다가왔다. 몇 개월 전과 다를 바 없이 팀장님은 오셨고, 신입사원들 앞에서 바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여러분 나처럼 살지 마세요." 


난 매우 놀랐고, 그 말을 내뱉은 사람이 팀장님이란 사실에 더욱 놀랐다. 아마 이는 신입사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팀장님은 묵묵히 이야기를 이어 나가셨다. 


"제가 회사생활 한지 20년이 넘었는데, 너무 회사에 올인했어요. 여러분들은 부디 그러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월급을 받으니 당연히 회사에 있을 때는 열심히 일해야 하죠. 하지만 본인들의 삶도 즐기세요. 퇴근하고 집에 가서 TV만 보고, 주말에 쇼파에 만 누워 있지 말고 꼭 뭐라도 배우시고 취미를 가지세요. 그래야 저처럼 안됩니다." 


신입사원 교육담당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저 이야기는 절대로 수료식에서 나와서는 안 될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본 최고의 수료식 '당부말씀'이었다. 상투적인 레퍼토리를 백 번 이야기 한 들 신입사원들은 졸거나 공감하지 못했었다. 그들에게는 조직에 충성해서 임원 되라는 이야기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 부흥기에 회사에 입사하여 20여 년 동안 묵묵히 회사가 요구한대로 살아온 20년간의 느낀 점이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 올인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 또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의도적으로 취미생활을 가질 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 취미생활이나 여가생활을 중시하면 왜인지 모를 죄책감과 함께 별종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사들이 가끔씩 “넌 참 재미있게 산다.” “퇴근하고 그걸 할 수 있어? 대단하다” 이런 소리는 '재미있게 살면 뭐하니 조직에서 인정받아야지.’‘너는 퇴근을 빨리하는구나.’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물론 나의 과잉 오버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그 뒤부터 건강한 취미 생활을 하기 위해 나 스스로 2가지를 다짐하였다. 


1) 어떠한 상황에서도 1주일에 1시간이라도 나와의 약속을 잡자 

2)하고 싶은 리스트를 작성하자 


1번은 직장 다니면서 취미생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고 2번은 갑자기 나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유용하게 사용하고 싶은 가이드북이었다.(실제로 이 것은 내가 퇴직하고 나서 요긴하게 쓰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논다는 표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놀고 있네!” 가 그 뜻이다. 그만큼 우리는 (특히 직장인) 논다는 것에 대해 인색하고 죄책감을 가진다. 매일 일에 파묻혀 일만 하는 사람보다 적당히 일과 삶을 균형 있게 하는 사람이 성과도 좋고 삶의 만족도도 올라간다는 연구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이제 취미활동과 여가생활은 선택이 아닌 반드시 해야 한다. 하지만 또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 압박감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냥 소소히 내가 1시간정도 보낼 수 있는 것을 우선 찾아보기를 바란다.


팟캐스트 직장인의 난

http://www.podbbang.com/ch/8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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