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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범 Jun 09. 2020

나에게는 쉬웠던 퇴사의 기억

누가 퇴사가 어렵다고 했나요? 전 너무 수월했습니다.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한 지 거의 6년이 다 되어 간다. 이제는 어느 정도 흐릿해져 가는 기억이지만 이상하게도 그때의 느꼈던 감정은 아직 그대로이다. 그때의 감정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LG전자에서 4년이 다 되어가는 해였다.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듯 나도 주변인들에게 퇴사할 것이라고 입버릇 말하고 다녔지만 정작 관두지 못하고  4년이나 흘렀다. 

그러면서 스스로  버텼다는 대견함과 동시에 이러다가 계속 못 그만두고 다닐까 봐 무섭기도 했다. 

내가 관둘 거라고 이야기 들을 때마다  "너 그러다가 정년까지 이 회사 다닌다."라는 소리가 맴돌았다. 


일반 대기업에서 4년이 지났다는 의미는 이제 곧 대리 진급을 앞뒀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부쩍 과장, 차장님들로 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너는 밝고 활달하고 다 좋아. 나도 너 같은 성향의 사람이 이 조직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하지만 너의 그런 성향은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마이너스 요인이 될 거야.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너의 성향을 바꿔야 해." 

그리고 나의 퇴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팀장은 "야 너는 너무 튀어. 좀 죽여라."였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떠한 성향의 인간인지, 뭐가 튄다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지난 4년간 나는 이 조직의 돌연변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조직과 선배사원들은 나를 특이한 사원, 튀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었다. 단편적인 사실만을 가지고 나를 판단하는 그들의 시선에 나는 화가 났다. 그 누구도 나에게 바꿔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논리 정연하게 이야기해주지 못했다. 그냥 이 조직과 안 맞는다는 말 뿐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들도 정확한 이유를 잘 모르지 않았을까 싶다. 결론적으로 난 나 자신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진짜 퇴사를 하고 싶었기에 난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주변에 퇴사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14년 12월. 나에게 주어진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이틀 후에 난 팀장에게 퇴직 면담을 신청했다.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했었지만 요지는 이거였다. 

"저는 반짝반짝거리면서 살고 싶은데. 여기 있으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아요."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지 혹은 나 같은 인간이 먼저 퇴사하겠다고 해서 반가웠던 건지 팀장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바로 원하는 퇴직일을 물어보았다.

나는 원하는 퇴직 날짜를 이야기했고. 면담은 의외로 매우 순조롭게 끝났다. 다른 사람들의 퇴직 면담처럼 다시 생각해 봐라, 너무 성급한 거 아니냐 라는 등의 가식적인 드라마 대사들은 오고 가지 않았다.


이렇게 퇴직이 순조롭게 진행되나 싶었던 찰나에 평가와 보상 업무를 하고 있던 나의 동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용인즉슨 내가 받을 성과급을 팀장이 본사에 이야기해서 잘랐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1년간 내가 고생한 것에 대한 인정을 받을 수 없음에 분노도 치밀어 올랐다. 한편으로는 이제는 아무런 미련과 후회 없이 회사를 나갈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하기도 했다. 이렇게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 때쯤에 팀장이 나를 따로 부르더니 확인 사살을 시켜줬다. 

"너 성과급 받게 되어 있었는데 다른 사람 주기로 했다. 난 지금 남아 있는 사람 챙길 거야. 서운할 수도 있는데  이해해 줘라."


이러한 해프닝(?)까지 겪은 뒤 난 전산으로 퇴직원을 제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퇴직사유에 '경직된 조직문화'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전자결제 승인을 올리고 난 후, 난 또 팀장의 호출을 받게 되었다.  

"야 네가 올린 퇴직원 중에 '경직된 조직문화' 이 부분 바꿔주면 안 될까? 이거 담당님이 보시면 어떻게 생각하시겠냐?" 


저렇게 말하는 팀장의 모습에 대꾸할 어떠한 기운도 에너지도 없었다. 어서 이런 경직되고 불합리한 조직을 하루빨리 떠나고 싶었다.

난 곧바로 퇴직 사유를 개인 사정 수정하여 다시 제출하였고, 나의 퇴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내가 퇴직하겠다는 의견을 내고 정확히 2주 후 난 사원증을 반납하고, 회사 정문을 나오게 되었다. 


PS. 대부분 퇴직도 힘들다고 합니다. 누가 퇴직도 힘들다고 했습니까? 전 너무 수월하게 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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