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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by 최우형

한국 회사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대표님’, ‘상무님’, ‘전무님’이라는 직함을 사용합니다.

이런 타이틀은 직장 안팎에서 굳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줍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역할과 위치가 자연스레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님’, ‘영문 이름’, ‘프로’, ‘책임’ 등 수평적 호칭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타이틀 하나로 누군가를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타이틀이 사라질수록, 나를 직접 말해야 하는 순간이 많아집니다


전 직장에서는 종종 발표 기회가 있었지만, 지금의 조직에선 그런 자리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최근, CXO 조찬회에 자주 연사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도 조찬회에서 제 순서를 기다리며 연사 소개지를 봤습니다.

저를 제외한 모든 연사분들이 ‘상무님’ 타이틀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날따라 타이틀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 타이틀이 그 사람을 바라보는 기대와 시선을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타이틀이 없는 만큼 더 많이, 더 열정적으로, 더 집중해서 저를 증명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그날의 발표는 높은 몰입과 좋은 피드백으로 돌아왔습니다.


수평적 문화는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요즘은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대세”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더 많이 설명해야 하는 사람은 언제나 정해져 있습니다.

“어느 팀이세요?”

“무슨 일 하세요?”

이런 질문이 가볍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나의 타이틀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증명한다는 건, 해명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의 기회입니다.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늘 당당하고 여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기대와 시선 앞에서,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설명이 쌓이면, 그것은 ‘브랜드’가 됩니다.


“왜 이 방향으로 이니셔티브를 기획하셨어요?”

“이건 어떤 데이터포인트 기준으로 판단하신 건가요?”

“그 선택의 근거는 무엇이었나요?”


이런 질문들 앞에서 매번 자신의 언어를 정리하게 된다면,

그렇게 정돈된 언어는 결국 나만의 브랜드 언어가 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타이틀이 아닌 스토리로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타이틀보다 훨씬 더 오래 기억됩니다.

타이틀 없이도 나를 설명할 수 있을 때, 더 강한 개인이 됩니다.


나를 ‘증명의 시간’을 귀찮아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건 단순히 나를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여정이자,

퍼스널 브랜드를 쌓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말하고, 설명하고, 설득합니다.


“언젠가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한때 나를 계속 증명해 온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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