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정체성을 묻는 순간, 성장은 이미 시작된다

by 최우형

분기에 한 번 온라인으로 1on1을 하는 동료가 있습니다.

몇 년마다 새로운 역할에 용기 있게 도전해 온 사람으로,

새로운 직무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설렘을 종종 조용히 나누곤 했습니다.

얼마 전 1on1 중, 오랫동안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질문 하나를 꺼냈습니다.

“요즘은… 제 정체성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제너럴리스트라고 하기엔 한 분야를 깊게 파온 시간이 있고,

스페셜리스트라고 하기엔 넓게 경험한 역할들이 많았습니다.

“이게 맞는 걸까요? 사람들은 저를 어떻게 볼까요?”

“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고 있을까요?”

그 말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의 고민을 들으며 문득, 제 25년 경력들이 떠올랐습니다.


저 역시 25년이 넘는 시간을 일하면서 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보안 전문가처럼 일한 시기도 있었고, 클라우드 엔지니어로 깊이 파고들던 시기도 있었고,

지금은 다시 특정 산업군의 고객의 접점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역할이 바뀔 때마다 저 역시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내 정체성은 어디에 있을까?”

경력은 쌓여 가는데, 정작 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확신이 없는 시기가 자주 찾아옵니다.

그러니 그 동료의 고민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정체성은 한 번 정의되는 ‘직함’이 아니라, 계속 흐르는 ‘변화의 과정’입니다.


대부분 한 번 정체성을 규정하면 안심하려 합니다.

하지만 정체성은 직책처럼 고정된 명함 같은것이 아니라,

경험과 실패, 도전과 후퇴를 지나며 조금씩 모양이 바뀌는 흐름입니다.

어떤 시기에는 전문성의 깊이가 나를 설명하고,

어떤 시기에는 역할의 넓이가 나를 확장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두 영역를 오가는 사람은 언젠가 조직에서 가장 입체적인 리더가 되기도 합니다.

식당의 주방만 알면 손님 마음을 모르고, 홀만 알면 음식의 디테일을 모릅니다.

하지만 두 곳을 다 경험한 사람은 손님이 왜 만족하고 왜 불편해하는지 끝까지 이해하는 사람이 됩니다.


제가 오랫동안 좋아해 온 말이 있습니다.

“성장의 증거는, 늘 반성과 후회를 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리더십은 완벽함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내가 잘하고 있나?” “다른 선택도 있었을까?” “지금의 나는 괜찮은가?”

이 질문을 잃지 않는 사람이 가장 깊게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흔들리는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가고,

의심하는 사람만이 더 나은 기준을 세우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사람만이 결국 리더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은 성장이 멈춰서가 아니라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흔들릴 때가 성장의 입구일 수도 있습니다.

“정체성을 잃은 게 아니라, 정체성이 넓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게 결국 더 좋은 리더를 만드는 과정이에요….”

젊은시절에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는 것,

그 용기와 사고의 깊이가 정말 대견했고, 참 고마웠고, 부러웠습니다.

정체성은 결론이 아니라 끝나지 않을 여정입니다.

그리고 흔들린다는 건 길을 잃었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성장의 방향을 스스로 묻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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