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쯤이었습니다. 사내에서 몇 번 스치듯 인사만 나누던 동료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변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몸이 눈에 띄게 마르고, 얼굴빛도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시간을 내자고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 앉았을 때, 그가 먼저 이렇게 물었습니다.
“혹시… 제 얘기 들으셨어요?”
제가 고개를 저으니,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습니다.
바로 직전에 매니저와 미팅을 했고, 이미 퇴사를 결정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가장 힘들 때보다, 이미 결정을 내려버린 뒤에야 말을 꺼낼 수 있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조직에서는 종종 동정과 위로를 혼동합니다.
하지만 이 둘은 닮아 보일 뿐, 전혀 다른 감정입니다.
동정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감정입니다.
“안 됐다”, “불쌍하다”는 말에는 의도치 않게 거리감과 우월감이 섞이곤 합니다.
그래서 동정은 상대를 멈추게 하고, 더 말하지 않게 만듭니다.
반면 위로는 옆에 앉는 감정입니다.
판단하지 않고, 해결하려 들지 않고, 그저 “그랬구나”라고 말해주는 태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정을 원하지 않습니다.
약해졌다거나, 더 파이팅 하라는 말을 확인을 받고 싶은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로는 원합니다.
그 마음이 이상하지 않다는 인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날 카페에서 조언도, 해결책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가 말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고,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네요”라는 말만 건넸습니다. 사실 제게는 특별한 대안이나 , 묘책도 없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조직에서는 늘 성과와 역할, 책임이 먼저 이야기됩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의 고통은 ‘관리해야 할 이슈’나 ‘개인의 문제’로 정리되기 쉽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존재가 아니라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위로는 다릅니다. 그 사람을 다시 사람으로서 불러오는 일입니다.
그로부터 3개월쯤 지난 어느 저녁, 퇴근길에 문득 그가 떠올라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예전과 달랐습니다.
제주도에 가족들과 와 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상하게요… 마음이 좀 편안해진 것 같아요.”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오래 눌려 있던 긴장이 풀린 흔적이 담겨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전에는 들을 수 없던 밝은 목소리였습니다.
그 후 일 년 이후 외근 중에 그가 문득 떠올라,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점심을 같이 했고 여전히 얼굴은 밝아 보였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가슴 깊이 감추고 싶은 무언가를 품고 살아갑니다.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지만, 누군가는 먼저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
불쌍해 보이고 싶지는 않지만, 괜찮다고 말해주는 위로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조직에 정말 필요한 건, 더 많은 조언이나 더 빠른 해결책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판단 없이 옆에 앉아줄 수 있는 태도, 말보다 침묵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누군가를 붙잡아 두는 말이 아니라, 떠나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위로.
그 차이는 결국, 누군가를 더 오래 버티게 만들게도 하고,
누군가는 비로소 자기 삶으로 돌아가게 만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