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외로움

by 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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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로움이 좋았다. 외로움은 내 집이었고 옷이었고 밥이었다.

어떤 종류의 영혼은 외로움이 완성시켜준 것이어서, 그것이 빠져나가면 한꺼번에 허물어지고 만다.

나는 몇 명의 남자와 연애를 해보려 한 적이 있지만, 내가 허물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그때마다 뒤로 물러서곤 했다. 나는 그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다만 외로웠던 것뿐이다.

그러니 새삼 그들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느니 마느니 하는 자책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나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었다.

그것을 똑똑히 알고 있는 바에야, 내 배반을 진작부터 명징하게 점치고 있는 바에야,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 한강의 ‘검은 사슴’ 중 -


외로움이란 언제나 곁에 있다.
누군가를 만나도 그 외로움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잠시뿐이다.

당겨진 고무줄을 놓으면 원점보다 더 멀리 튕겨지듯
그 잠시의 시간이 지나면 외로움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외로움을 즐기지 않으면

외롭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찾을 것이고

그건 더욱 큰 외로움을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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