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일. 불안과 버팀목
다섯 번째 일기장.
월요일에는 행복한 이야기를 많이 적었으니 오늘은 보기 싫은 내부를 관조하려 한다.
내 속에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꽤 커진 상태다. 어렸을 때도 컸지만, 지금은 성인이 되어 현실과 맞닿아 있어 그럴까. 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달랐다.
내 불안은 어디서 근거하는 것인가 생각해 보면, 가정사다. 나는 초등학교쯔음부터 고등학교 저학년까지 참 불안한 삶을 살아왔다.
빚쟁이를 피해 이혼한 어머니 집에서 버스를 타고 등교하던 초등학생. 아무것도 모르고 집에서 혼자 고독에 몸부리 치던 그 초등학생이 나였다.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아버지와 눈물을 흘리는 조모를 보는 중학생. 난생처음 해보는 체육대회 날 조부가 돌아가 상주 옆에서 신세를 탓하던 중학생. 그것도 나였다.
겨우 모은 돈으로 대학교 예치금을 전전긍긍하며 넣던 고등학생. 환급된 예치금을 몰래 빼 간 아버지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할 뻔 한 고등학생. 그 또한 나였다.
나의 청소년 시절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학교에서 배웠던 가장 믿을 수 있는 편이라던 가족. 그 가족이 나에게는 아니었다. 모든 가족 불행의 근원인 아버지를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없었다. 언젠가 죄책감에 30만 원을 나에게 주면 그다음 주쯤에는 35만 원이 사라져 있었다. 화를 내도 변하는 건 없었고 지금에 와서는 완전히 포기한 상태다.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 하고 말이다.
말이 샜다. 다시 본론에 집중하자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 마음을 지지해 줄 버팀목이 없었다. 이제는 회사에 다니며 내가 스스로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맛있는 것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버팀목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내 인생의 버팀목은 늘 사람이 아닌 게임, 음악, 책 속 가르침 따위의 것이었다.
물론 덕분에 얻은 것도 있기는 하다. 그 어떤 상황에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을 배웠다. 책이나 음악. 예술적 가치를 갖는 게임들의 주인공들과 영웅은 내 삶의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잃은 것도 있었다. 심각한 자존감의 부재와 애정에 대한 불안이 가장 컸다. 누군가 나를 좋아해 준다면 나는 그 의도를 몰라 불안해했고, 덕분에 많은 인연을 놓쳤다. 사람이라는 버팀목을 경험해 봤다면 아마 조금은 덜 했을까.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예전 할아버지가 키우던 나무처럼 스스로가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불안감이 내 마음의 하늘을 모두 가려서 내 심지의 나무가 자라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 그렇다.
어떻게 해야 스스로의 버팀목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좀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아직은 어떤 방법으로 바로 세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확신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계속해서 챙겨나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전 일기장에서도 말했듯이 그것들이 내 마음의 하늘에 구름을 지우고 있다.
관조일기가 끝나는 날. 나는 대부분의 구름을 지우지 않았을까 기대한다. 그래서 이 일기를 쓰는 것이 좋으면서도 그만두고 싶다.
부디 청명한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쓰는 날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