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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Jul 30. 2024

한 여름에 나홀로 교토 - 0일차

서두

이 글은 저 혼자 교토로 떠난 2박 3일의 일기장입니다. 일기장이다 보니 글이 조금 건방져 보일수도 있겠습니다.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여행동안 제 마음이 어땠는지, 감정을 기억하기 위해 적는 글이니 큰 기대는 안하시는 게 좋지만, 같이 여행을 떠났다 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먼저 간단한 나의 상황을 말하자면



나는 11월 30일에 권고 사직을 당했다. 원하지 않는 퇴사였고 커리어적인 문제가 생겼지만 왜일까. 기분이 나쁜 것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어차피 실업급여가 6개월이나 나오는데, 나를 위한 시간으로 그 6개월을 살아보자. 라고 말이다. 이 기간동안에도 할 말들은 많지만 그건 나중에 하고. 지금 글에서는 이 때의 시간에 문자들을 할애하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난 취직하려면 취직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취직하면 첫 출근 전, 무조건 혼자 여행을 다녀오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리고 7월. 나는 꽤 괜찮은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출근일 결정 전화가 온 날, 나는 약 9일 뒤를 첫 출근일로 정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채용 관계된 것은 가렸다. 이것만 보고도 안다면 모른척 해주길...


교토를 가고 싶었다.


여름의 일본은 지옥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우리 나라보다 적도에 가깝고 또 습도는 얼마나 높은지. 여름에 일본을 다녀온 여행기를 보면 모두 말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삿포로 같은 좀 위에 있는 곳으로 갈까도 했지만 결국 마음이 향한 건 교토였다.

이전에 오사카를 친구와 둘이 갔을 때 사천왕사(시텐노지)라는 사찰을 들린 적이 있었다. 당시 그곳의 분위기와 구조물은 나를 충분히 매혹했고 이는 곧 이번 여행은 이런 곳을 더 둘러보리라 마음먹게 했다.

'역시 일본 문화제는 교토지!'

교토가 여름의 지옥중 제일 지옥이라고 들었으나 그 우려가 매혹된 내 마음을 이길수는 없었다.

이전 여행에서 찍은 사천왕사(시텐노지)




마음을 정한 후에는 교토에 있는 관광지와 문화재들을 찾아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MBTI 조사 결과 나는 J가 90%이상인 계획형의 극인 사람이다.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견디는 사람에 속한다는 말이다. 이젠 어느정도 극복했지만 그래도 어떡하나. 사람이 이렇게 태어나버렸는걸. 내 행동여부와는 관계 없이 계획이라는 것 자체. 그것은 아직도 나에게 필요했다.

'전에 오사카 갔을 때 정리한 표가 있을텐데...'라며 컴퓨터를 뒤적이니 곧 엑셀 파일을 찾을 수 있었다. 친구와 갈때도 계획표는 기본적으로 내가 적었는데, 이렇게 과거의 자신의 기록물은 나같은 계획형에게 꽤나 큰 도움이 된다. 과거의 자신이 미래의 자신을 가르친다라...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조사를 하면 할 수록 교토에 빠져들었다. 교토는 '천년고도'라는 명성에 맞게 엄청나게 많은 사찰과 절. 아름다운 관광지들이 가득했고 이를 찾아 볼때마다 모든 곳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가기만 했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나 큰 욕심이라는 것도 조사를 할 수록 뼈저리게 알 수 밖에 없었다.

나무위키의 교토 내 관광지들. 사실 이것들 말고도 더 있다


교토는 기본적으로 분지 지형이다. 산에 둘러쌓여 있어서 여름에는 더위와 습함이 증폭되는 지형이라는 말이다. 여름에 우리나라 대구에서 살아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지옥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로 강조하자면, 교토는 대구보다 적도에 가깝다.

대구에서 군생활을 보낸 나는 이 지옥의 무서움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계획을 짤 때 욕심과 꽤나 쉽게 타협할 수 있었다.


타협 내용1. 오전과 오후에 각각 1개 이상의 장소를 가지 않는다.

교토는 기본적으로 버스나 전철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심지어 웬만하면 버스를 타야하는데 길이 엄청나게 막혀서 버스를 타는 것과 걷는 것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럼 대부분 걸어야할텐데 파트 별 시간에 두 곳 이상을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낮에 그곳들을 걸으며 인간 바베큐가 되는 내 모습이 뻔히 보였다.


타협 내용2. 관광지를 다녀온 후에는 반드시 숙소에 들러 휴식을 취한다.

분지의 더위에 당해본 적 없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온 몸이 익을 것 같아서 물을 때려 넣어도 탈수와 열사병의 전조가 느껴지는 그 느낌. 몸이 저리는 그 거지같은 느낌을 경험해 본 사람이면 휴식의 중요성을 알 수 밖에 없다. 그늘이던 에어컨의 힘을 빌리던 중간 중간 몸의 온도를 낮춰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때문에 어딜 갔다 오는 효율 없는 짓이 되더라도 숙소를 들려 휴식을 취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짰다.


이런 타협 내용과 가고 싶은 관광지를 정리하며 짠 계획은 이렇게 나왔다.

2박 3일 일정표 - 할 행동과 근처 갈만한 음식집들도 함께 적어뒀다.

출국 전날 밤 모든 계획을 완성했다. 2일차 점심이 조금 무리가 있는 일정이 됐으나, 여행 컨디션과 내 만족도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다음주에 바로 출근을 해야했기때문에 여행이 별로였다면 망설임 없이 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혼자 이자카야나 타치노미(서서마시는 이자카야)에서 혼술을 해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기에 착실히 저녁에 술마시기 위한 계획도 짰다.


6개월 동안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면서 쉬며 얻은 장점 중 하나는 '세상 일을 늘 계획적일 수 없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런 가르침을 잊지 않으며, 나는 계획은 세우되 그때 가서 맞춰 바꿔 다니겠다는 조금은 늘어진 계획표와 마음을 들고 짐을 쌌다. 내일은 출국하는 날이었다.


다음 글인1일차부터는 사진과 함께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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