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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수다쟁이 Aug 07. 2020

아빠가 밥을 먹으며 울었다.

그 갈치조림이 문제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아빠는 퇴직 후 시골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려 초보 농사꾼 속이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름 잘 해내고 있는 듯싶었다.


아무튼../ 저녁은 항상 아빠와 할머니 둘이 해결한다. 할머니는 지긋한 연세에도 고집스럽게 자식을 위해 밥을 하신다. 내가 집에 내려와 지내면서도 낮에는 밖에서 보냈으니 아빠와 할머니의 일상은 달라질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주말 시험을 보고 좀 쉬고 싶어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 저녁시간이 되고 할머니가 밥 먹으러 오라는 소리가 들려, 할머니 집에 내려갔다. (할머니와는 바로 위아래 집을 두고 같이 또 따로 산다.) 할머니는 비린내 나는 생선 조림을 자주 만드는데, 내가 집에 있는 날이면 날 위해 더 많이 만드신다. 아마도 할머니한테 생선조림은 자식과 손녀를 위한 특별식 같은 개념일 것이다.


그런데 그 갈치조림이 문제였다. 할머니가 자꾸 아빠와 내가 먹는 반찬을 상관하며, 갈치 가시를 발라주려고 나섰다. 본인은 밥 한 숟갈도 들지 않은 채 이리저리 분주했다. 할머니는 내가 갈치를 본인이 생각했던 만큼 먹지 않는 것이 못마땅해 보였다.


이 모든 할머니의 행동은 평소에 아빠가 정말 싫어하는 모습이다.

"바보 같이 하지 좀 말고, 엄마나 어서 잡수라고!"


결국 아빠가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자신은 챙기지 못하고 자식과 손녀 먹일 생각에 전전긍긍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던 듯싶다. 평소에 아빠가 할머니의 이런 모습을 싫어하는 것을 알았기에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아빠는 이런 할머니의 행동들을 구질구질하다고 표현했다. 평생을 자기를 위할 줄 모르고, 대접받을 나이에도 밥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어머니가 야속했으리라.


그러고 나서 아빠는 소리 없이 빠른 속도로 밥을 해치웠다. 왜 그렇게 빠르게 먹냐며 아빠를 쳐다봤는데, 아빠는 고개를 숙이고 밥만 입안에 욱여넣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아빠의 눈가가 빨개진 것을 보았다.


아빠가 밥을 먹으며 울고 있었다.


나를 챙기는 할머니의 애달픈 모습에서 옛날 일들이 떠올랐을 거라 짐작한다. 어렵게 살 던 시절, 아버지 없이 4남매를 키워 온 할머니의 고생스러운 삶이 아직도 아빠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와서 본인이 힘들어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분이란 걸 아빠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모습이 너무 싫으면서 가슴이 아팠던 거다. 예전처럼 어렵게 살지도 않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갈 자식이 있고, 매달 생활비도 넉넉하게 주지만 그 모든 것을 할머니는 누리는 법을 모른다.


나는 엄마 아빠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안쓰러웠던 적이 없는데... 자기 엄마의 모습이 안쓰러워 울음을 삼키는 아빠가 안쓰러웠다. 할머니는 아빠의 한마디가 야속해 '이게 뭐가 바보 같냐며' 구시렁거리며, 밥을 물에 말아 잡수셨다. 할머니는 아빠의 마음도 모른 채 아빠한테 괜히 혼나기만 한다고 했다. 자식만 위하며 살아온 습관은 몸에 남아있지만 자식의 속내는 알아채지 못하고 점점 아기가 되어가고 있다. 아빠가 소리 없이 울음을 삼킨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노모와 같이 늙어가면서 얼마 남지 않은 노모가   편안했으면 하는 마음,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야속해  엄마가 밉고 안쓰러운,,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그를 울게 만들었으리라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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