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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 Mar 20. 2019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아빠는 육아휴직 중

   

방과후학교 1분기를 신청하기 위해서 아들들을 불러놓고 뭘 해보고 싶은지 물어봤는데 뜬금없이 예담이는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얘기했다.      

“아빠, 이번 방과후학교 신청할 때는 영어랑 놀이체육 할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영어?”

“네, 영어요.”

“왜? 너 영어 싫어하잖아”

“그냥 해외여행 가면 아빠처럼 영어로 말해보고 싶어요.”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된 듯한 그 한 마디.

“아빠처럼 되고 싶어요”  

아빠는 외국인이랑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수십 번 문장을 되새김질하는 것은 비밀이다.      

사실 내가 놀란 이유는 예담이가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운 이후로 영어를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유치원 특성화 교육 때 영어를 배웠는데 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엄하게 지도하시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영어를 공부하는 게 싫다고 했다. 영어가 싫다고 하는 아이를 억지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공부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니까.’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사실 조금은 불안했다. 부모로서 어떻게 아이가 하고 싶은 것만 시키겠나? 좋은 것은 먹여보고 싶고, 좋다고 하는 것은 시켜보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인 것을... 하지만 자식은 부모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전통적 명제 앞에 우리 부부도 무릎을 꿇었다.

피아노 학원도 몇 달 해보더니 안 하고 싶다고 해서 그 흔한 체르니 한 번 못 펴보고 그만두었다. 그나마 태권도는 예담이 하교 시간과 우리 부부의 퇴근 시간의 차이를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는 유일한 보호막이었고 다행히 예담이도 좋아했다.

1학년 때 하교한 뒤로부터 우리가 퇴근할 때까지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을 줄여보기 위해 학원 2개를 다녔는데 너무 힘들다며 펑펑 울어서 우리 부부는 충격을 받았더랬다.  

‘그랬던 예담이가 영어를 공부하겠다니...’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3학년 때부터 영어교과수업이 진행되는데 영어를 못하면 부끄러울 것 같다는 것. 두 번째 이유는 예담이가 관심 있는 여자 친구가 영어 학원에 다니는 데 거기를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학원은 일주일에 3번을 가야 한다고 하니 망설였다. 관심 있는 여자 친구와 같은 학원에 다니는 설렘은 일주일에 3번을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을 넘어서지 못했다.

‘아들아, 아직 너는 사랑을 모른다. 아빠라면 사랑을 택했을 것이다.’

어쨌든 예담이는 방과후학교 영어부는 일주일에 2번이라 괜찮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빠의 짧은 영어 실력이 예담이의 영어 공부를 위한 동기유발에 도움이 되었다고 뿌듯해한 내가 어리석었다.

결론은 그것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쪽팔리기 싫은데 영어 공부는 많이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예담이의 영어 공부가 시작되었고 방과 후에 영어부에 가서 일주일에 두 번씩 공부하고 온다. 영어 선생님께는 유치원 때의 안 좋은 기억으로 영어를 싫어하지만 3학년 때 영어를 배우니까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다고 미리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잘 지도해보시겠다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하루는 예담이가 영어를 배우고 와서 말했다.

“아빠, 영어가 재미있어요.”

예담이가 영어를 재미있다고 하다니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다. 뭐가 재미있는지 물어봤더니

자기가 만든 알파벳 발음표를 보여주더니 몇 개의 단어를 써서 보여주었다.

처음 보는 단어라 나름 긴장하며 읽어 보았는데 예담이가 예상한 발음과 비슷했나 보다.

“아빠, 나도 그렇게 읽었어요. 우와! 신기하다.”

알고 보니 요즘 유행하는 게임의 캐릭터 이름이란다.

그렇게 영어가 예담이 마음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교사로서 학부모님과 상담을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후회는 아이가 배울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이것저것 가르쳐보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불안한 마음에 어렸을 때부터 배울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를 불러 앉혀놓고 한글도 가르쳐보고, 영어도 가르쳐 보고, 학습지도 받아 주며 공부를 시키는 부모의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배울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무너지고 있었고 후에는 부모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일이 너무나도 많이 보였다.

동화 <아주아주 많은 달>은 부모의 생각대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판단하는 것에 대한 어리석음을 경계하게 하는 책이어서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동화 그림책 <아주아주 많은 달>에서 왕은 배탈이 난 공주를 낫게 하기 위해 뭐든지 다 해주겠다고 말한다. 공주가 원한 것은 바로 ‘달’이었다. 왕은 신하, 마법사, 수학자에게 달을 구해오라고 명령하지만 달까지는 너무 멀고 커서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상심하던 왕에게 궁중 어릿광대가 다가와 말한다.

“공주가 달을 갖고 싶다고 한다면 공주에게 갖고 싶은 달이 어디에 있고,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얼마만큼 큰지 물어보면 되지 않나요?”

궁중 어릿광대는 그렇게 공주와 대화하며 공주가 원하는 게 ‘엄지손톱보다 조금 작고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둥근 금’이라는 것을 알고 금 목걸이를 만들어 준다. 그렇게 해서 공주는 병이 낫고 편안히 잠들 수 있게 해 준다.      

다시 예담이가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시기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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