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육아휴직 중
첫째는 어릴 때부터 아빠와 엄마의 말을 잘 따라주었다. 그래서 부모인 우리는 몸과 맘이 편했다. 하지만 둘째는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보통은 이런 식이다.
“예섬아, 양치해야지.”
“싫어.”
“예섬아, 아빠랑 한글 공부하자”
“싫어”
지금은 둘째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끊었지만
“예섬아, 학습지 하자”
“싫어, 더 놀고 싶단 말야.”
‘싫어’도 한두 번이지 자꾸 반복되면 속에서 짜증이 솟구친다. 그러다 부부 싸움을 하거나 아내에게 잔소리를 들어(요즘 육아휴직 기간이라 밖에서 가져오는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에 주로 내 감정의 변화는 가족들의 영향이 지대하다.) 내 감정 상태가 온전치 않은 날과 마주하는 때에는 그 날은 전쟁이다.
“예섬아, 양치하자”
“싫어. 이따 또 먹을 거야.”
“그럼, 내일 아침도 먹고,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을 건데 계속 양치 안 할 거야?”
“자기 전에 할 거야.”
“너 그렇게 아빠 말 안 들으면 아빠도 네 말 들어주기 싫어!”
“그런 게 어디 있어! 아빠 싫어!”
자식과 말로 전쟁을 치르고 나서 아이가 잠든 모습을 보면 후회와 마음 깊은 곳에서 새어 나오는 한숨이 아이들 방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둘째와 전쟁을 치르길 반복하며 나도 힘들었다. ‘싸우는 게 즐거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둘째와 갈등을 겪지 않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1
“예섬아, 양치하자.”
“싫어.”
“아빠가, 칫솔 갖다 줄게.”
“그래, 그럼 할게”
“아빠도 양치할 거야. 같이 하자”
양치가 끝나고 치실로 마무리하는 아빠를 보고 묻는다.
“아빠, 그건 뭐 하는 거야?”
“이건, 양치질로 못 빼는 이 사이에 꼭꼭 숨어있는 음식 찌꺼기를 빼는 거야. 너도 해볼래?”
“응, 나도 해볼래.”
열심히 치아 사이를 치실로 문질러 보니 음식 찌꺼기가 많이 나온다.
“이거 봐봐. 방금 양치했는데 이렇게 많이 껴있지? 이거 냄새 맡아봐.”
예섬이가 냄새를 맡더니
“으아, 지독하다. 아빠, 왜 이렇게 냄새가 나는 거야?”
“음식이 이 사이에 껴있으면 입 속에 세균들이 썩게 하는 거야. 그래서 냄새가 지독하지.”
“이렇게 냄새가 나면 친구들도 너랑 얘기할 때, 냄새난다고 생각하겠다.”
“진짜 지독해. 나 이제 양치하고 꼭 치실 할래.”
“그래? 이제 예섬이 입에서 꽃 냄새나는 거 아냐?”
“아빠, 내 입냄새 맡아봐.”
계속 내 코에 자기 입을 대고 ‘하- 하-’거린다.
#2
학교 끝나고 두 아들은 가방을 나에게 맡기고 놀이터로 직행한다. 2시간 정도 지났을까? 다 놀고 집에 온 아이들과 밥을 먹고 난 뒤에는 항상 아빠랑 공부를 한다.
“예섬아, 아빠랑 한글 공부하자.”
“싫어, 더 놀고 싶단 말야.”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놀고 와서 또 논다고?’라는 생각부터 먼저 올라오지만 마음을 다독이고
예섬이와 내가 서로 기분 좋게 한글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럼 조금 더 놀고 하자. 그럼 30분만 더 놀고 할까? 어때?”
“그래, 좋아.”
그렇게 한글 공부를 하다 보니 얼마 전보다 한글 실력이 부쩍 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둘째에 대한 기대치를 크게 낮췄기 때문에 느끼는 상대적인 감정이리라.)
“한글 실력이 부쩍 늘었네. 이러다 한글 박사 되는 거 아니야?”
예섬이는 흐뭇한지 씨익 웃는다.
“아빠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스티커로 붙여줄게.”
‘놀라워’라는 스티커를 붙여주니 아직 받침이 있는 한글을 읽지 못하는 예섬이가 아빠 보고 읽어달라고 한다.
“예섬이 한글 실력이 엄청 늘어서 아빠가 깜짝 놀랐어. 그래서 ‘놀라워’라는 스티커를 붙였어”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예섬이가
“아빠, 사랑해” 하고 꼭 안아준다.
예전에는 예섬이가 말을 안 들어서 너무 힘들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를 아빠 마음대로 대하지 말고 내가 행복할 수 있게 대해줘요.’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예섬이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면 나는 예섬이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지 얼마나 고민했을까?
예섬아, 아빠 말을 안 들어줘서 고마워.
그러고 보니 예담이가 걱정이다. 너무 말을 잘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