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이 말에 나는 빨래를 널었다.

아빠는 육아휴직 중

by gt

육아휴직을 하며 당연하겠지만 집안일의 역할분담이 변경되었다. 대부분의 집안일이 나에게로 넘어왔고 나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사실은 살짝 억울함이 올라와서 아내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내의 말 한마디로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내가 육아휴직을 했을 때 자기도 집안일에서 손을 뗐잖아.”

분명 나는 아내가 육아휴직을 할 때 집안일을 했다. 빨래도 널고, 개고, 밤에 아이들 책도 읽어 주고……. 하지만 아내의 기억 속에는 정작 가장 도움이 필요했을 때 내가 없었나 보다. 그래서 많이 속상했나 보다. 그 속상함 때문에 기억조차 왜곡되어버린 것을 억지로 고쳐주고 싶지는 않다. 부부싸움은 그렇게 시작되니까. 아무리 논리적이어도 감정이 상하면 그 걸로 대화 끝 싸움 시작이다. 그냥 누군가가 말을 멈추면 된다. 더구나 나는 말을 길게 하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입을 닫았다.

어제는 처갓댁에 갔는데 아내가 먼저 집에 가겠다고 했다. 내일은 퇴근 후에 대학원 가는 날이니까 먼저 가서 쉬라고 했다. 아이들이 아파트에서는 까치발로 다녀야 하고 제대로 뛰어다닐 수도 없는 스트레스를 단독주택인 처갓댁에서 그나마 풀 수 있어 조금 더 있다 가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아들 둘과 외종질을 놀게 하고 집으로 갔는데 집에서 쉬는 줄 알았던 아내가 청소를 다 해놓았다. 빨래도 헹궜다. 빨래도 자기가 널겠다고 그냥 꺼내 놓기만 하란다.

난 그 말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이게 되었다. 그 말이 참 좋았다.

“내가 할게”

그 말은 정말 자기가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절대 헛말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만약, 아내가 이렇게 얘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왜 세탁기는 돌려놓고 안 널었어?”

“빨래 좀 쌓아놓지 마. 쉬면서 뭐 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빨래를 널며 내 마음속으로 수 없이 아내랑 싸웠을 거다. 다음에 복수할 기회를 노리면서 가장 상처 줄 수 있는 말을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내의 배려가 좋은 기분으로 빨래를 널게 만들었다. 오히려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나 대신 집안일을 해준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내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지니 나로 하여금 귀찮은 몸을 일으켜 빨래를 널게 했다.

이런 역설적이고도 놀라운 말의 힘!!

이 글은 아내가 가장 먼저 읽을 것이다. 자기에 대한 내용을 쓰려면 검열을 받고 쓰라고 했다. 혹시 자신에 대한 악담을 할까 걱정되는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올리기로 했다. 어제 빨래를 널며 낯 부끄러워 차마 하지 않은 말을 글로 나마 전하고 싶어서다. 행여 이 글을 보고 아내는 “내가 할게”를 연발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든다.

그럼 이렇게 얘기해야지.

“그럼, 나랑 같이 하자.”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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