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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Jan 13. 2019

이렇게만 살아간다면.

인생 뭐 있어? 아내는 뭐 있단다.

  매번 아내가 계획하여 나들이를 다녀왔던 것이 쫌 그랬는지 오늘은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고 했다. 사실 평소에는 가고 싶은 곳이 많아도 막상 어딜 가려고 하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전에 가본 곳 중에 몇 곳을 빠르게 생각했지만 너무 쉽게 찾아 말하는 것과, 생각나는 대로 "여기 가자, 저기 가자" 하는 것이 너무 성의 없이 보일까 봐 검색하는 노력을 보였다. 그리고 검색 내용도 넌지시 보여주며 의향을 살핀다. 그러고서는 말했다. "남양주 한번 가볼까?" 그곳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내는 좋다 했고, 예배가 마치는 대로 남양주로 향했다.


  아내는 내가 목적지를 선택하면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 나보다. 물론 장난이라고 하지만 장난에도 뼈가 있다. 아내의 장난을 자연스레 받아주며 남양주에 도착했다. 먼저 예쁜 카페에 들어가서 차 한잔하고, 따뜻한 날씨에 실내에만 있을 수 없어 팔당 호수 변을 걸었다. 맞은편엔 하남시가 보였고, 신식 건물? 스타필드가 보였다. 이곳은 하남과는 달리 평온했고 미사강변을 달리는 차들의 소리도 음소거된 채 한적했다. 강변 산책로에는 몇몇 사람들이 무리 져 걷고 있었고, 이따금 자전거가 시원하게 자기 도로를 달리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우리 도로를 걷고 또 걸었다. 아무리 따뜻하다고 하지만 바랑을 마주하고 걸어가는 것은 추웠고, 바람을 등지고 태양을 정면으로 걸으니 마치 봄인 것 같았다.


  아내와 손잡고 강변을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아내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런 고민은 당연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왠지 뜬금없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유시민'이냐고 농담을 던졌고, 아내는 왜 유시민이냐고 물어 유시민 작가가 쓴 '어떻게 살 것인가?'란 책이 있음을 말했다.


  난 우리가 살 집만(물론 우리 집) 있다면 그 이후에는 그냥 욕심부리지 않고 버는 대로 즐기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내도 자신은 '미니멀 라이프'로 살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가 항상 해왔던 얘기다. 지금 살고 있는 열 평 남짓의 집에 필요한 몇 가지만 갖추고 오순도순 살고 있는 것이 꽤나 만족스러웠나 보다. 앞으로 우리에게 아이가 생길지 생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생기지 않더라도 지금과 같은 열 평 정도에도 만족하며 살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나도 동의했다. 다시 난 미래에 대한 두려움만 떨쳐진다면 버는 족족 인생 즐기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말이다. 미래만 보장된다면 말이다. 미래가 가만히 보장될 리 없겠지만 말이다.


  아내는 내 이런 내 생각이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내가 일을 시작하면 연금보험 하나 더 넣겠다고 말했다. 아내의 현명한 선택 덕분에 난 노후에 혼자보다 더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소일거리로 용돈벌이만 하고 있지만 나도 백번의 도전 끝내 어딘가에서 정직원으로 일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된다면 좀 더 구체적인 미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남양주 카페와 팔당 변 산책을 거쳐 '물의 정원'이라 명명한 곳에 가서도 똑같이 손을 잡고 산책을 했다. 인적도 별로 없어 산책하기에는 그만이었다. 북한강을 바라보는 흔들의자에 앉아 셀카를 찍고, 강 안쪽 꽁꽁 언 것 것처럼 보이는 얼음 위에 올라가 보겠다며 1미터 거리도 안 되는 거리를 조심조심 걸어가 위에 서서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그 허세를 받아주는 건 역시 아내가 최고다.


  오늘의 목적지는 남양주였지만 근처 양평에 좋아하는 냉면집이 있어 그곳을 저녁 식당으로 찾았다. 옥천냉면이 유명하여 죄야 똑같은 간판을 하고 있지만 아내가 추천하는 냉면집을 가본 후로는 그곳만 찾는다. 이제는 함흥냉면보다 평양냉면을 찾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입맛이 변하기도 한다는 것을 냉면을 통해 배운다. 그곳의 수육은 일품이다. 빨간 새우젓갈이 더 일품이다. 새우젓에 고춧가루를 넣으면 그런 맛이 난다는 것을 아내가 말해줬다. 평양냉면의 슴슴한(심심한이 맞는 표현인가?) 국물은 가슴속을 편안하게 해 준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쓸어 담았다. 또 언제 담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아내가 선택한 비빔냉면에도 몇 젓가락 얹었다. 그리하여 두 그릇을 모두 비우는 걸로 오늘의 일정이 마무리됐다.


  이렇게 살고 싶은 거다. 아내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대화도 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소소한 즐거움을 갖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행복하다. 미래에 다가올 어둠이 우릴 비껴나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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