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실직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영 Jan 13. 2019

일당 정산일

앞으로의 내 가치에 대한 정산은 결코 녹록지 않으리라.

  알바는 알바일 뿐이다. 알바로 버는 돈을 가지고 넉넉한 살림을 꾸릴 수는 없음을 알았지만 막상 월급날이 되니 허망함은 더했다. 월급은 아니다. 월 두 번에 걸쳐 나오는데 1~15일 일한 건 25일에 나오고, 16~31 일한 건 익월 10일에 나온다. 내가 이번 달 10일에 받게 되는 월급은 작년 12월 16-31일에 일한 몫이다. 하지만 작년 말에 일한 회수는 4회이다. 고작 네 번 일하고 받는 돈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내에게 합산해보라며 핸드폰에 적어놨던 금액을 읽어 내려가다 결국 실망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생각을 잘못해서 여태껏 일한 모든 금액을 받는 걸로 착각했었다.


  내일 월급날이라며 아내에게 떡볶이를 사주겠다고 했는데.. 그 정도야 사줄 수 있겠지만 받는 돈이 부실하여 생색내기도 힘들 지경이 됐다. 아무렴 상관없긴 하다. 그깟 신전떡볶이도 못 사줄까 보냐. sns를 통해 신전떡볶이 사진을 보며 "맛있겠다"를 연발하는 아내에게 모처럼 오랜만에 '내가 일한 대가'로 사주려 했는데 모양이 빠졌다.


  그러고 보면 지난 사회복지사로 일한 시간 돈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물론 그 당시에는 혼자여서 가능했겠지만 그 당시에 번 돈으로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산 것 같다.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서인지 할 것 다했지만 지출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게 함정. 그 당시 가장 큰 지출은 술이었다. 충남 서천에 살면서 그곳의 바닷바람과 사랑 넘치는 인정이 나로 하여금 술을 들이켜게 한 것 같다. 지금 고향에 올라와서는 그만큼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 당시 어떻게 그리 마셨을까 싶다. 많게는 주 5일 술을 먹은 적도 있고, 술을 먹기 전에 술 깨는 약을 먹고 본격적으로 술을 먹기도 한다. 2차, 3차는 기본이고,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바닷가에 캠핑 테이블과 의자를 깔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고기를 구우며, 술을 마시기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과 술을 더 사와 말 그대로 진정한 술판이 되고야 만다. 이런 술에 쩌든 생활을 하고도 돈이 부족하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복지사로서 나쁘지 않은 보수였다.


  사회복지사들은 이런 농담을 하기도 한다. 농담이 아니었던 시절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사회복지사들은 거의 알고 있는 농담이다. '사회복지사들끼리 결혼하면 수급자 된다.' 사회복지사들이 수급자와 같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지만, 사실 우리가 누굴 도울 만한 처지는 아니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농담을 이미 물 건너간 농담이 됐다. 내 경우만 해도 다른 직업의 친구들의 보수를 물어보면 비슷한 수준이거나 내가 더 높은 경우도 많았다. 물론 직업과 직급에 따라 다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앞선 농담이 어울릴 만한 시절은 이미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처지가 점점 나아지고 있는 반면 다른 시설의 사회복지사들의 처우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또한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도 있다고 한다. 표준화된 급여기준이 있음에도 아직 일관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같은 사회복지사라도 분야가 다르면 급여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표준화된 급여 테이블의 적용이 쉽지 않은가 보다. 내가 일했던 지역사회 복지관의 경우는 지금으로서는 그래도 '보통'은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일의 소명을 떠나 생계만 놓고 봤을 때도 나쁘지 않은 처우다.


  지금의 백수 생활 중 예전 직장인 시절을 떠올리니 오늘 받게 되는 월급이, 아니 월급도 아니고, 주급도 아닌 그냥 '일당 정산일'이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아내에게 "나는 집에서 놀면서도 이 정도는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다. 이미 아내는 통장에 찍힐 금액을 알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물론 보람과 신선한 배움이 대가였다면 그것도 괜찮은 이유가 될 것이다. 그 시간에 일하는 사람은 나와 같은 새벽 택배 하는 분들과 가끔씩 보는 환경미화원, 택시기사들 뿐이다. 무수한 술집들도 문을 닫는 그 시간, 땀 흘려 일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엘리베이터가 없는 계단을 뛰어올라가고,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골목길을 뛰어다녔다. 그것이 하루의 큰 즐거움이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의 거리를 볼 수 있다는 특권과 새벽 공기를 한껏 들이마실 수 있는 호사도 있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눈이나 비가 왔을 때 어떤 느낌일지는 아직 경험한 바가 없으나 지금 생각으로는 별로 겪고 싶지 않다. 그러나 거기에도 또 얻는 무언가가 있겠지.


  내일은 아내와 떡볶이를 먹을 거다. 그것도 아주 매운 떡볶이를.  아마도 순대와 튀김, 어묵도 추가될 것이다. 백수 6개월 차에 시작된 새벽 택배일(주로 새벽)의 과실을 따먹을 시간이다. 10일 정산일은 초라할지 몰라도 25일 두 번째 정산일과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는 앞으로의 내 가치에 대한 정산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이다. 각오해둬라.

매거진의 이전글 이렇게만 살아간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