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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Jan 13. 2019

실수를 인정한다는 것

실수를 인정한다는 것 창피한 게 문제가 아니라 내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

  고집불통인 사람은 배울 수 없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인정해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고집불통이었던 내가 얼마나 변하게 될지는 모르나 스스로를 낮추고 변하려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세상을 사는 건 나뿐 아니라는 기본적인 생각만 가지더라도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오늘 새벽, 그러니까 느낌상으로 어제 새벽(언제나 '새벽'은 오늘인지 내일인지를 따지고 봐야 한다.) 알바로 새벽 택배 배송하는 하는 장점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그중에 빠뜨린 한 개가 있다면 이 일에는 어떠한 스트레스도 없다는 것이다. 그냥 내게 주어진 물량을 잘 배달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어제 말했던 새벽일의 장점, 無스트레스가 무색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새벽 배송의 배달 시간은 보통 3:30-07:00까지다. 짐을 챙기는 시간까지 포함해서이다. 자신의 이름표가 붙은 '롤테이너'(백배 물량을 개인별로 나눠놓은 바퀴 4개 달린 철로 된 보관함이다.) 모든 택배원들은 자신의 이름이 붙어있는 롤테이너 한 개만 찾아 그 안에 보관된 택배물품을 자기 차량에 싣고 나가면 배송의 준비는 완료된다. 그 간단한 작업에 실수를 했다. 분명 내 이름이 붙어있는 롤테이너를 찾아 차량에 옮겨 실은 후 배송 출발을 했건만 가는 도중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담당자였다. 


  담당자는 왜 남의 것을 가져갔는지 따져 물었다. 나는 그럴 리 없다며 분명 롤테이너에 적힌 내 이름을 확인하고 물건을 실었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잘못 가져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고의는 아니라고 믿겠어요'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내 이름을 헷갈려 다른 사람이 가지고 나가야 할 물건을 내 차에 실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마치 모함처럼 느껴졌다. 도저히 내 실수라고 믿기지가 않았고, 인정할 수 없었다. 뭔가 잘못됐고, 오해가 있다. 분명 내 실수가 아님을 확인하고 따져 물어야 할 상황이었다. 나는 바로 유턴하여 캠프(물류창고)로 돌어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그 사람은 이미 다른 물건을 실어 출발했다고 말했다. 유턴은 무의미한 행위가 됐다. 순간 내 롤테이너에 붙은 이름표만 찾는다면 누명을 벗을 수 있을 꺼라 생각하고 캠프로 간다고 했지만 이미 두 사람 모두 나가 있는 상태에서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말하며, 지금 실은 물품을 그냥 배달하고 다음부터 조심하도록 당부했다.


  찜찜했지만  '그래, 엎질러진 물인데 실수를 인정하고 그냥 잘못 가져온 대로 마무리 짓자'는 생각으로 다시 배송지로 향하며 신호 걸린 틈을 타 업무 카톡을 확인했다. 이때 떡하니 올라온 사진 하나, 내 이름의 롤테이너였다. 물건도 가득 실려있었다. 내 실수가 확실했다. 내 롤테이너는 캠프에 있었고, 난 다른 사람이 가야 할 지역의 물건을 내차에 가득 싣고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의혹을 제기했다. 물론 담당자에게 제기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실수를 인정하기 싫은 거의 발악 수준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내게 보내온 사진의 선명도를 보아하니 분명 컴퓨터 모니터를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내 실수를 알려주기 위해 내 이름이 적혀있는 롤테이너를 찾아서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면 분명 선명한 사진이어야 할 텐데 왜 컴퓨터 모니터를 찍은 사진이었을까? 의혹은 커져갔고, 내 실수는 음모론으로 덮여갔다.


  이 정도 생각의 흐름이라면 분명 정신적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내가 실수 할리 없다는 굳음 믿음을 불식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스멀스멀 창피함이 올라왔다. 그냥 사과하고 담부터 잘하겠다고 하면 끝인데 그 실수 하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부끄러움에 빠진 나는 업무 단톡 방으로 들어가 담당자를 비롯하여 나 때문에 롤테이너를 찾아 헤맸을 누군가에게 사과를 했고, 다음부터 이름을 잘 확인하고 가져가겠노라고 약조했다.


  찜찜한 생각이 떠나지 않은 채로 배달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퇴근한 아내에게 이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아내는 나를 질책하지도 그 상황을 음모론으로 보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제기한 의혹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말할 뿐이었다. 난 담당자가 내게 보내온 사진이 선명하지 않다는 건 분명 내 이름의 롤테이너를 직접 찾지 않았다는 얘기고, 만들어진 조작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상한 음모론에 대해 아내는 말했다. 그건 내가 잘못 가져가서 당황했을 원 배달자가 내 이름의 롤테이너를 찾아 사진을 찍어 담당자에게 톡으로 보냈고, 그 담당자는 컴퓨터로 보내온 사진을 확인하고 그것을 찍어 나에게 보냈을 거라는 추측이었다. 일리가 있었고, 거의 맞는 말로 들렸다. 더 이상의 항변은 하지 않았다. 이미 사과를 한 마당에 쪼잔하게 다시 들쳐 보이는 내가 너무 없어 보였다.


  모든 배달자의 배달이 끝나는 아침 7시경 담당자는 총평을 한다. "모두 수고 많으셨고요, 오늘 두건의 배달자 실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두 분 모두 고의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다음부터는 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짧은 총평이었다. 400명 가까이 있는 단톡 방에서 내 이름과 실수가 까발려졌다는 사실에 창피했지만 실수를 인정하는 자로 거듭나고 싶어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부끄러움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담당자의 총평 글 아래는 누군가의 댓글 한 개가 달렸다. '롤테이너의 여닫이 양문을 닫아주시고, 닫은 문 중앙에 이름표를 붙여주시면 이런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라는 댓글이었다. 그 말이 맞았다. 문이 열려있던 수십 개의 롤테이너로 인해 이름을 확인하고도 다른 롤테이너의 열린 문짝을 이끌고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참으로 멋진 대안이었다. 닫혀있던 문 정가운데 이름이 붙어 있다면 다른 롤테이너를 끌고 갈 실수를 분명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멋진 대안 밑에 맞장구를 치고 싶었지만 그 또한 남 탓으로 들릴까 봐 그냥 말았다. 그 대안 밑에는 내가 잠들기 전까지 댓글이 달리지 않았다.


  실수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더 이상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좋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 그것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일이 될 것이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 통렬히 반성한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모두가 함께 상생하기 위한 좋은 대안들을 생각하고 함께 나누는 일들이 얼마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며 금일 내 옹졸한 일상을 꺼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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