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실직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영 Jan 16. 2019

8차 면접-면접관의 한마디

그냥 나답게 살자.

  누군가 그랬다. 지금껏 일곱 번의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말하니, 그럼 이 다음번엔 분명 된다고. "칠전팔기란 말 모르냐고" 그땐 "맞다 그런 말이 있었지?" 하며 왠지 모를 승리의 기운이 내 주위를 감돌고 있음을 느꼈다. 사자성어와 같이 정확하게 떨어지는 8번째 도전 '팔기'의 기운이 과연 오늘의 면접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살짝'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낮아진 자존감으로 인해 더 이상의 실망이 두려워, 기대를 아예 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내가 '살짝' 기대가 된다는 건 꽤나 긍정적인 사건이다.


  하나 더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이전에 일해왔던 복지관과 다른 곳에 지원했다는 것이다. 이전의 근무하던 '복지관'이라고 한다면 사회복지사들이 주를 이루는 공간이었고, 그 외 다른 치료사라던지 요양보호사, 영양사 등 소수의 다른 직종들이 함께 어우러져 일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면접 기관은 서울시 산하 장애인 인권단체였다. 이곳에는 장애인들을 대변하고 지원하는 시민 활동가들과 변호사 그리고 소수의 사회복지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곳이 기대감을 갖게 하는 이유는 복지관과는 다른 환경에서 일해보고 싶었고, 10년 넘게 했던 사회복지의 경험을 낯선 곳에서 성공적으로 뿌리내리는 시도를 하고 싶었다. 새로운 영역이니 그동안의 매너리즘에서도 탈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면접은 시작됐다.


  면접관은 4명, 수는 중요하지 않다. 8명이건 10명이건 어떤 질문을 하는지와 그것을 빠르게 이해해서 얼마나 잘 대답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시작은 자기소개로 시작했다. 복지관의 경력들을 가볍게 나열했고, 지원동기를 말했다. 면접관 중 가장 높은 위치로 보이는 사람이 질문했다. 이곳에서의 업무는 복지관에서의 업무와는 전혀 다를 수 있다고 운을 떼었다. 하지만 난 복지관에서도 장애인들을 위해 일했고 이들을 돕는 과정이 아주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를 사례도 자주 접했으며 이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이 이곳과 조금 다를 뿐 내가 일했던 곳에서도 충분한 사례들과 해결의 프로세스가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인권센터와 복지관과의 차이를 두고자 하는 질문들이 계속됐다.


  초반에는 경력 소개에 언급됐던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실태 조사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물어왔고, 이 경험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던 어떤 해에 인권실태조사위원으로 뽑혀 하루 이틀 경험한 거라 심도 있는 대답보다는 소감 정도로 답했다. 그리고 인권실태조사의 문제점도 그 당시의 경험을 떠올려 생각나는 대로 답했다. 장애인 시설에서 인권침해 논란이 가중되는 이유도 물었다. 난 점검과 감시가 소홀하기 때문이라고 답하면서 최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된 동산원의 실태를 얘기하며, 잘 운영되겠거니 방치해 두니 원장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들의 권리를 살피는 외부 감시가 필요하며 내부에서도 '인권'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문제가 있을 시 바로 '공익제보'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질문이 들어왔다. 내부 직원들이 '쉬쉬'하면 어떡하냐고 말이다. 앞서 말한 외부 감시와 점검 시스템이 정기적으로 있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답했다.


  다음 질문부터 본격적인 질문이었다. 서울시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장애인 문제애 대해서 말해보라고 했다. 그동안 장애인과 만나서 이야기해보며 느낀 것 몇 가지를 얘기했다. 이동권을 위한 교통인프라 및 편의시설의 확충이라든지 중증 장애인들의 교육권, 그리고 생계유지를 넘어서 문화여가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좀 더 세밀한 답변을 원했고, 그중 가장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 한 가지를 말하라고 했다. 그냥 얘기했던 3가지 중 한 가지를 답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게 '이것'이라고 느끼지 않고, 한 가지를 선택해 말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생각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여러 질문이 이어지다가 드디어 식상해진 질문이 들어왔다. 마지막 짧은 경력에 대한 얘기였다. 작년 7월까지 일하고 지금까지 무얼 했냐고 말이다. 구직활동을 꾸준히 했고, 최근 들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슨 아르바이트인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면접관은 작년부터 오랜 기간 놀고 있던 것에 대해 궁금했던 것 같다. '계속해서 사회복지를 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처음 들어보는 질문이다. '7개월 놀았다고 사회복지를 할 생각이 없다고 생각한 건가?' 여전히 할 생각이 있으며, 이쪽 분야로만 이력서를 넣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속적인 구직활동을 했지만 뽑아주지 않으니 놀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드디어 등장한 전 직장에서의 퇴사 이유 질문.


  늘 받는 질문이라 지금까지 대답 수위를 낮춰보기도 하고 높여보기도 했지만 기관장과의 갈등 및 불화를 좋아하는 기관은 없었다. 나름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그 이유 또한 좋아하지 않았다. 오늘은 새로운 '예'를 갖다 붙였다. 요즘 체육계 '미투'신고가 활성화되고 있는데, 특히 금메달을 따기 위해 선수들의 인권이 무시돼도 된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지관에서도 실적 달성과 성과를 위해 직원들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기관장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개선하려 기관장에게 묻기도 하고 직원들의 의견을 모아 얘기하기도 했지만 변하지 않아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후 '장'으로 보이는 면접관이 "복지관도 평가를 받으려면 실적이 있어야 할 텐데?" 란 질문이 나온 걸 봐서 역시나 '장'은 '장'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었다.


  이후 마지막 '사례 질문'이다. 지적장애인 한 명이 여럿의 노숙자들에게 이용당한 사건이다. 노숙자들이 어떤 지적장애인을 핸드폰 가게로 데리고 가서 개통 서류에 사인을 하게 하고, 핸드폰 몇 대를 개통시켜 채무에 시달리게 했던 일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난 홈페이지에서 이와 관련한 칼럼을 이미 읽고 왔기에 더욱 내 생각을 답하기 어려웠다. 원론적인 얘기로 답했을 뿐이다. "이 장애인이 또 다른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잘 설명하고, 통신사로 연락해 당사자가 아무것도 모른 채 나쁜 사람들에게 이끌려 시키는 대로 서류에 사인만 한 것이라고 말하며, 장애로 인한 인지 저하로 약관 숙지가 미비했음을 알리고 채무를 탕감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요청하겠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때 왼쪽에 앉아있던 한 면접관이 인상을 '팍' 쓰며 목소리를 높여 나에게 물었다.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말이다. '이게 범죄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이건 무조건적인 범죄 행위이기 때문에 채무에서 구제하는 것보다 앞서 경찰에 신고가 먼저 돼야 한다는 얘기로 들렸다. 난 그의 직설적인 질문에 당황해하며 답했다. '범죄 행위 맞지요.'


  면접을 마치고 밖을 나와서도 그 특유의 경상도 억양의 질문이 귀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게 범죄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당연히 범죄지만 그런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에게 정답은 '이거다'라고 말했던 그 면접관의 얼굴이 떠나질 않는다. 면접 중에 따져 물었어야 했다. 우선순위의 문제지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갑'의 위치에 있더라도 인상은 피고 질문하라고도 말하고 싶었다. 마지막 질문에 기분이 확 상해버린 나는 아내를 만나러 가는 내내 그 생각에 잠겨있었다.


  아내에게 모든 상황을 얘기했지만 항상 위로만 받는 이 상황이 달갑지 만은 않았다. 속으로 삭히려니 얼굴에 너무 드러나 보이고, 얘기하려니 창피했다. 부부라는 이유로 생각을 쏟아냈지만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하는 건 다음 면접에 칼을 갈겠다는 다짐뿐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나오면 '말실수'를 한 것 같아 찝찝하고, 오늘 같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나오면 또 분통 터지고 화가 나서 찝찝하다. 하지만 오늘 알았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 나오는 게 속이 후회가 없다. 붙건 떨어지건은 나중 문제다.


  인간은 상황을 통해 배워야 하지만 오늘 면접관의 '무례'는 두고두고 기억 날 것이다. 면접자가 맘에 안 들면 안 뽑으면 될 일이다.


  예상컨대 오늘 기대했던 '칠전팔기'는 '팔전구기'로 이어지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수를 인정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