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하여 굴비사건
"곧 명절인데 사돈댁에 뭐 좀 해 드려야 할 텐데 뭘로 하면 좋을까?"
"엄마가 뭐하러 신경 써? 우리가 챙기면 되지"
"그래도 그러는 거 아니야. 결혼하고 첫 해인데.."
"아니야 그럴 필요 없고, 우리가 챙길게"
"그래도 그러는 거 아니래도 그러네"
"엄마가 준비하면 장모님도 또 준비해야 하잖아. 뭐하러 번거롭게 그래. 앞으로 계속할 것도 아닌데."
"그래도 이번에는 해야 하는 거야"
"작년 추석에도 굴비 했잖아"
"그때는 그때고 이번엔 결혼 후 처음 맞는 설이고.."
"아니야. 서로 귀찮잖아. 뭐하로 그래. 서로 안 하는 게 좋지"
이때 '소곤소곤' 옆에서 훈수 두는 소리가 난다. 아버지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간다.
"그럼 이번만 하고 다음 명절부터는 안 하는 걸로 하면 되지"
엄마는 지난 추석처럼 이번에도 전라도에 사는 이모한테 말해 굴비 좀 올려 보내겠다고 했다. 그 말에 내가 머뭇거리니 다른 조건을 제시한다.
"굴비는 한번 했으니깐 이번엔 홍삼으로 할까?"
개인적으로는 안 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의례 해야 한다는'의무'로 하는 것은 금방 지치기 마련이니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엄마도 나름의 이유를 달고 있었다. 형은 결혼한 지 5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도 형네 처가와 지금까지 교류(?)하고 있는 점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나름의 성공경험을 갖고 있었다.
엄마는 형네 처가, 즉 사돈댁과 명절이 아닌 평상시에도 활발한 오고 감을 이뤄냈다. 벌써 몇 년째 김장을 담그지 않고, 사돈댁에서 가져다 먹고 있으며, 엄마도 각종 과일이나 먹거리가 생기면 반으로 나눠 형이나 형수님 편에 보내곤 했다. 이뿐 아니라 조카의 생일 즈음엔 괜찮은 한정식집을 골라 양가가 함께 모여 식사하며 조카 생일을 축하해주기도 한다. 이때도 어떤 법칙이 작용하는데 서로 번갈아가면 밥을 산다는 것이다. 물론 현장에서는 잠시 계산서 뺏기 놀이가 진행되긴 하지만 말이다. 매년 만남을 기억하는 사돈댁은 우리 집으로 보자면 형수님 말고도 또 하나의 큰 가족이 생긴 것이다. 이것이 부모님이 원하는 사돈과의 관계이다.
'자녀들을 결혼시키긴 했지만 부모님들까지도 그렇게 가족처럼 오고 간다는 게 가능해?'(사돈댁도 가족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돈댁과의 성공경험을 알고 있는 나는 엄마의 행동이 한편으로 이해 가면서도 그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어찌 됐건 아내에게 물어보고 답을 준다고 말하고 일단은 전화를 끊었다.
서로 불편한 일은 만들지 말자는 나의 생각은 오로지 '촉'에서 나온 말이다. 형네 처가와의 관계는 두 어머니의 성향이 맞아서 되는 일이고, 같은 지역에 살고 있으니 좀 더 활기찬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처럼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진다고 한들 세상 모든 사돈들이 이렇게 지낼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퇴근한 아내에게 처가 선물 얘길 하니 그냥 어머니 하고 싶으신 걸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다음날 아침 전화를 걸어 엄마가 그냥 하고 싶은 걸로 준비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만족해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오늘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아내가 말한다. 우리가 명절 때 양가에 드리려고 주문한 곶감 취소했다고 말이다. 장모님한테 물어보니 작년 곶감도 아직 냉동실에 있다고 했다며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육포세트로 바꿨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내가 말한다.
"엄마한테 장모님이 선물 준비하신다고 말했더니 준비하지 마시라고. 한쪽에서 준비하면 다른 쪽도 준비해야 하니 서로 귀찮다고 서로 준비하지 말자고 말했다고 했다."
장모님의 합리적 성향을 미리 파악한 나는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감했지만 직접적인 거절 의사를 들으니 엄마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됐다. 내가 엄마에게 극구 하지 말자고 했던 게 바로 이런 상황을 직감해서인데.. 결국 슬픈 예감은 틀리질 않는다. 아내는 어머님께 전화드려 준비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내가 아침에 전화했으니 이미 주문하셨을 거야"
아내는 취소가 가능한지 전화해보는 게 좋겠다고 다시 말했다. 나 또한 이번까지만 하고 마는 것보단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처가의 뜻을 잘 전달해야 했다. 하지만 문뜩 짜증과 화가 올라왔다.
에둘러 좋게 말할 수도 있었지만 내 기분도 상한 탓에 아내에게 전해 들은 처가의 뜻(?)을 그대로 전달했다.
"봐봐. 내가 뭐라고 했어. 처가에서 앞으로 계속 챙기는 게 귀찮으니 하지 말자고 하시잖아"
"내가 그렇게 얘기했는데 왜 굳이 한다고 해서.."
"주문한 거 취소할 수 없어?"
"이미 주문한 건데 뭐하러 다시 취소해?"
"이번만 갖다 드리고 다음부터는 안 하면 돼지"
"아냐, 하지 말자고 하는데 뭘 갖다 드려?"
"그런가?.. 그럼.."
"어차피 너네 집으로 올 거니까 그냥 너네가 먹어라."
"갖다 드리던 우리가 먹던 내가 알아서 할게"
전화를 끊고서도 속이 부글부글 한다. 아내는 내 표정을 보고 그냥 가져다 드리자고 말했지만 이젠 가져다 드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가 느끼는 서운함이 나를 못 견디게 했다. 아내에게는 엄마가 서운하신 것 같다고 말했고, 내 기분 또한 좋지 않다고 말했다. 아내는 내 눈치를 살핀다.
"지금 어머니한테 다시 전화드려서 가져다 드린다고 할까?"
"다 말해놓고 이제 와서 뭘 다시 전화해"
"그럼 어떡하지?"
"지금 어머님 집에 찾아뵙고 다시 잘 말씀드릴까?"
"아냐"
당장 부모님 집에 찾아간다는 무리수를 던지며 상황을 돌파하려고 하지만 난 아무런 액션도 취하고 싶지 않았다. 굴비가 배달 오면 그때 결정할 것이다. 생각이 많아진다.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는데 그러질 못한 게 계속해서 맘에 걸렸다. 엄마가 굴비를 주문하기 전에 아내를 닦달해서라도 장모님의 의향을 먼저 물었어야 했고, 설령 장모님의 의사를 늦게 알았다 한들 엄마에겐 좋게 설명했어야 했다. 이미 선물 주문이 들어간 뒤 처가의 의향을 '귀찮아서'란 단서를 달아 말했던 나에게 가장 화가 났다.
결혼을 하고 나서 정말 '집안 대 집안'의 결합이 아닌 '너와 나 우리 둘'의 결합으로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 어떤 가족 간의 문제도 발생시키고 싶지 않은 이유에 서다. 인생 전반기를 함께했던 원가족이 나로 인해 어떤 상처도 받지 않기를 원한다. 이렇게 보자면 어쩌면 지금 이런 분란의 여지를 확실하게 끊어버리는 게 나은지도 모르겠다.
어떤 게 좋은 모습인지는 개인마다 집안 어른들 생각마다 다를 것이다. 의무로 형성되는 관계, 내지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형성되는 관계. 어떤 게 답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혼으로 인해 만들어진 새로운 가족과의 '관계 정립'정도는 하고 가야 하지 않나 싶다.
가족화합의 명절 설을 앞두고 이런 일을 접하니 씁쓸하기 그지없다. 곧 있으면 양가의 명절 음식 장만하는 일정과 설날 당일의 방문 순서도 정해야 한다. '가족과 함께'라는 기쁨이 있어야 하지만, 가족이 된 지 얼마 안 된 사위나 며느리로서는 친 가족처럼 서로를 잘 아는 것도 아니며, 함께 어울리는 것이 쉬운 것도 아니다. 따라서 초반에는 의무감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즐거움이 아닌 의무감으로 하자니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부모인데 결혼한 자식이 저렇게 생각한다면 난 어떤 마음이 들까? 아마도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그냥 오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