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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Jan 28. 2019

없던 시누이 집들이

아내는 요리 천재

  아내는 요리실력이 대단하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닐 텐데 5-6인분을 가볍게 뚝딱해낸다. 실력도 점점 늘어가는 것 같고, 물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쉬운 평이겠지만 이제는 요리를 설렁설렁 해도 그럴듯한 맛과 비주얼이 나오며, 더 나아가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기에 이르렀다고 본다.(오버인 것 같지만 오버가 아니다.)


  오늘은 양식이다. 한식력(?)도 출중하지만 손님이 오면 주로 양식을 선보인다. 아내의 필살기, 감바스, 스파게티, 샐러드, 목살구이 등등. 친척동생들은 맛있다고 소리를 높였다. "누구는 이런 걸 먹으려고 집 밖으로 나가는데 누구는 밖에서 먹을 만한 음식을 집에서 먹는다고" 말했다. 나에게 한 말이다. 난 이렇게 살고 있다.


  주로 낯선 상대에게는 어색함으로 대하는 아내로서 오늘의 일정이 결고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동생들이지만 친척들이 집으로 온다는 것은 부담 백배인 것이다. 거꾸로 아내의 친척동생들이 온다 하더라도 내 긴장은 꽤나 높을 것이라 생각되니 말이다. '동생'이기보다 '시댁 식구'인 것이다. 앞으로 꾸준히 만날 상대이기는 하나 결혼을 통해 생긴 인연들이 쉽게 껴안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시간을 두고 관계의 질을 높여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곳저곳 훅 들어가는 나와 다르게 아내는 낯가림이 심하다. 결혼하고 나서 알게 됐다. 처음엔 나와 비슷한 성격일 꺼라 생각했는데 같이 살게 되니 나와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아내 지인을 내가 만날 경우 거리낌 없는 대화가 이어지는 반면 내 지인을 아내가 만날 경우 웃음으로 자리를 지키는 경우를 몇 번, 아니 그 보다는 조금 더 봤다. 성급한 판단은 아닐 것이다. 아내의 성향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내가 남편이라 예외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처럼 좁혀진 거리에선 어색함 100이 아닌 친밀감 120으로 변하는 아내의 성격도 내가 몰랐던 부분이기도 하다.


  여하튼 아내의 수고로 집들이를 잘 마무리했다. 아내는 오늘 모임을 준비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시누이도 없는데 시누이가 5명 있는 것 같아' 공감되어 속으로 웃었다. 남자 형제밖에 없는 나지만 가까이 지내는 친척동생들이 여럿 있어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인지 요리와 세팅에 좀 더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친척동생들이 도착해서는 아내만 고생하는 것을 보고, 나를 나무라기도 했다. 나도 그 장단에 몸을 실어 주방을 배회하며 설거지와 서빙에 신경 썼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들과 실컷 떠들다가 디저트까지 맛있게 먹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동생들도 아내를 신경 쓰고 있음이 보였다. "이만 가봐야겠네요." 내일 출근해야 하는 아내의 표정을 읽어가며 그만 떠들고 가야겠다고 말한다. '언니'가 진짜 '언니'가 되려면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동생들을 가까운 역까지 데려다주고 들어오니 아내는 설거지까지 완벽하게 끝내 놓고 소파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아내에게 수고했다고 토닥거리며 동생들을 바래다주며 들었던 음식 칭찬을 얘기해주니' 나에게 씩 웃어 보인다.


  "동생들한테 가오(?) 좀 섰어?"  

  "응. 섰어"


  나도 목에 힘 좀 들어갔다. 아내 덕이다. 아내에게 고마움을 다시 표한 후 피곤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고생은 아내가 하고 드러눕긴 내가 먼저 드러누웠다. 오늘의 집들이 일정을 위해 새벽일을 하고나서  잠을 덜 잔 탓이다. 누워 널브러진 내 곁으로 아내가 들어와 눕는다. 그리고 날 껴안는다. 껴안으며 뭐라 뭐라 멘트도 했는데 잠결이라 잘 들리진 않았다. 그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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