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실직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영 Feb 19. 2019

사명감 따위

삐뚤어질 테다.

  목표는 항상 이렇다. 거창한 목표가 아님에도 지켜내질 못한다. 결국 흐지부지 된 글쓰기는 가끔 생각날 때 쓰는 일이 돼버린다. 일기처럼 매일 글을 쓰면 삶이 변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를 해내려 맘먹었는데 역시 작심삼일이다.


  설날쯤 글을 쓰고 말았으니, 벌써 한 달이 다 됐다. 그동안 특별할 일이랄 건 없었지만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게 특별하다면 특별하다. 취업준비를 하며 시간 나는 대로 시작한 새벽 알바였지만 마치 주업으로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취업자리를 알아본다거나 이력서는 쓰는 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알바를 하고 남은 시간을 잠이나 여가로 때우고 있었다. 아내가 출근할 때쯤 알바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는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아내가 퇴근할 때쯤 일어나 아내와 시간을 보낸다. 알바가 끝나는 시간은 대중이 없고, 내가 늦어지면 아내가 대중교통으로 출근을 한다. 그렇게 난 프리타가 되어 있었다.(프리-아르바이트의 줄임말로 일본 사회의 생계형 알바를 말한다. 조금 전 브런치를 둘러보다 알게 된 단어다.)


  정식일, 그렇지 않은 일이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마치 밤낮이 바뀐 직장인 코스프레를 하는 나를 발견하고, 전도된 주객을 다시 전도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일본은 프리타 인구가 꽤나 많다고 하는데 세태를 적극 수용하며 살아야 하는지가 고민이 됐다. 하지만 이곳은 일본이 아니며, 아내가 싫어할 것 같아 혼자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동안 믿고 있던 환상들이 1년도 되지 않아 모두 깨졌다. 내가 자질과 소질이 충분하다 믿었던 사회복지사로서의 삶은 숱한 면접관들의 질문들 속에서 그 형체가 흐믈흐믈해져 갔다. 10년간의 경험과 경력은 서랍 속의 훈장일 뿐이었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의 대답조차도 머리를 굴려 어렵사리 끼워 맞출 정도니 이보다 더 난감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오래 쉬어서 감이 떨어졌다는 말로 변명이 되지 않는 건 일에 대한 사명은 그리 흐릿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안다. 분명 일을 할 때는 구체적인 목표와 사명감으로 일해야 한다는 어디서 보고 들은 것 같은 세뇌 구절 때문이다. 나에게 분명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신기루였나 보다. 인간의 착각의 동물이니까.


  그래도 걸만한 딴지는 다 걸어보자. 꼭 사명감이 있어야 하는 건가?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자. 생계형 직장인들의 삶에 꼭 사명감이 있어야 하느냔 말이다. 다달이 받는 월급쟁이지만 매번 연기처럼 사라지는 급여통장을 쥐고 발만 동동 구르며 사명을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된단 말인가? 거기에 어느 직종 할 것 없이 상하좌우에 치이며, 사직서를 가슴 깊이도 아닌 얕은 곳에 넣어둔 채로 꺼내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는 결정 아닌 결정을 하며 살아가며 직장인들이 무슨 놈의 사명감이란 말인가? 사명감 찾다가 처자식 다 길거리에 나앉게 만드는 선비들이 꼭 그 짝 아닌가?


  사명감의 빈정은 여기서 끝내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명감이란 빛 좋은 개살구 일뿐, 사명을 가진 자의 성공사례를 만인에게 적용시켜 모두가 훌륭한 인재로 포장하여 가식적인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몹쓸 교육 행태가 바로 사명감의 역설. 꿈이 없는 자와 사명감을 갖지 못한 자의 좌절과 인생 전체의 비화로 퍼져나가는 스토리.



  때마다 나에게 질문하는 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이 분야에서 직장을 구합니다. 사명감은 아직 없는 것으로 간주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할 것이고, 그렇게 일하다 보면 사명감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명도 듣고 싶습니다. 솔직한 사명을 들려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난 창조적이어야만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