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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Mar 21. 2019

까짓 껏 내 몸무게쯤이야.

내 무게를 견딘다는 것

  얼마 전 친구가 놀러 왔다. 중학교 시절부터 축구로 맺어진 친구다. 요즘도 가끔 함께 축구를 즐기곤 하지만 예전처럼 축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학창 시절만 해도 평생 축구를 하며 살 것 같았다. 못해도 나이 들어 조기축구 고문 정도는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의 무게는 일찍부터 축구를 잊게 만들었고, 그저 생각나면 친구 둘셋 모여 설렁설렁 몸 푸는 취미 정도가 되어 있었다. 하나 비록 나이 먹어 몸은 예전 같지 않더라도 학창 시절부터 스포츠로 맺은 우리 관계는 일상의 어느 관계보다 끈끈하다. 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지만 반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결혼하고 처음 우리 집을 찾는 친구와 오후 시간을 함께 보냈다.


  친구는 대만인 와이프와 국제결혼하여 갓 돌 지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과외선생인 친구는 최근 수업을 조정하고 아내와 아이와 함께 처가인 대만에 다녀왔다. 다녀와서도 아이 돌보는 얘기만 하는 것으로 보아 한국에 있던 대만에 있던 돌쟁이 아이를 돌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한 명이 이런데 두 명 세명은 엄두가 안 난다며 아내는 둘째를 갖고 싶어 함에도 자신이 반대하여 2세 계획이 실현되지 못한다고 했다. 친구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력일 것이다. 아이 하나를 감당해야 할 무게도 만만치 않은데 두 명, 세명을 어찌 감당하랴. 난 어디선가 들은 얘기로는 텀을 두고 둘째, 셋째를 나으면 과거 어른들이 그렇게 자랐듯이 큰애가 둘째, 셋째를 돌보는 기적을 경험하기도 한다는데 요즘도 해당되는 얘긴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육아에 대해 딱히 할 얘기가 없는 게 자녀가 없는 나로선 한 명의 자녀든 그 이상의 자녀든 현실적인 육아의 감이 오지 않기 때문에 형식적인 공감만 할 뿐이다. 얼마 전 두 명의 아이를 키우는 처남이 나에게 물었다. 자녀계획이 있느냐고 말이다. 당연히 계획이 있고 열심히 노력 중이라고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자녀를 안 갖는 방법도 하나의 방법이란다. 육아가 만만치 않으니 자녀 없이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로 해석됐다. 그래도 키워놓으면 뿌듯하고 든든하지 않겠냐는 내 말에 씁쓸이 웃으며 그건 모르는 거라며 의외의 답을 한다.


  현실 육아란 지금은 물론이요 앞으로 아이들이 자립하기까지 까마득한 시간을 지원해야 하는 부모의 무게감이 존재한다. 단순 키워 놓았을 때의 뿌듯함과 든든함으로 재빨리 순간 이동시키기에는 그 간극이 너무도 큰 것이다. 자녀가 하나건 둘이건 경험하지 못한 자는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인 듯하다.


  놀러 온 친구와 알지도 못하는 육아 얘기로 꽃을 피우다가 가까스로 화재를 돌렸다. 할 말이 많았던 친구의 포동포동해진 얼굴을 보고 '너 살 많이 쪘다'라고 말하니 이제 잠시 육아해서 해방됐으니 열심히 운동해서 빼야겠다고 말했다. 친구의 이번 대만행은 사정이 있어 아내와 아이를 처가에 데려다주는 배웅이었던 것이다. 두 달가량 육아에서 해방된 친구는 온몸에 서서 자유로움이 뿜어져 나왔다. 두 달간 과외 일을 하며 예전에 날렵했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의지도 보였다.


  맘만 먹으면 살 10킬로쯤은 뺐다가 다시 찌울 수 있는 그의 말에 신뢰가 갔다. 만날 때마다 달리 보이는 건 쉽게 찌는 그의 체질 때문이기도 했지만 의지의 산물이기도 했다. 이런 친구가 날렵한 모습을 찾겠다고 하니 나도 자극을 받고 싶어 졌다. 그리고 바로 여기 오피스텔에 입주민을 위한 헬스장이 있다고 했다. 친구는 급 관심을 보이더니 가보자고 했다. 난 흔쾌히 그를 안내했다. 다른 입주민들이 있을 수 있지만 둘 다 입주민인 척하고 운동하면 그만이었다. 생각하고 보니 남자 둘이 같은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는 설정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누가 그런 걸 신경이나 쓸까.


  넓지는 않지만 필요한 기구들로 빼곡히 차있는 실속 있는 헬스장을 마주한 친구는 감탄을 연발했다. 심지어 아무도 없어, 사람 신경 쓸 것 없이 멋대로 운동할 수 있었다. 친구는 부럽다며 운동기구들을 살펴본다. 지금부터 우리들만의 세상이었다. 친구는 손에 잡히는 대로 발길이 닫는 대로 두서없이 운동하는 나에게 기구 하나하나를 설명해주며 어떻게 운동하면 근육을 키울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나는 그 말에 개인 트레이너가 생긴 양 귀 기울여 듣고 친구가 하는 대로 따라 해 보기를 반복했다.


  나정도의 성인이 얼마의 무게추를 들어 올려야 하는지 잘 몰랐던 나에게 10-15회 정도 무리 없이 들었다 놨다를 할 수 있는 정도의 무게라고 말했다. 무게를 달아 몇 번 들어 올려보니 무리가 가지 않는 선은 내 체중의 절반 정도였다. 친구는 처음에는 그 정도로 하다가 무게를 감당할 수 있으면 자신의 몸무게 정도를 맞춰놓고 운동을 하라고 권했다. 다시 하체운동기구 추에 내 무게를 걸어 다리를 굽혀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친구가 살짝 밀어주니 그제야 조금씩 움직인다. 역시나 내 무게를 들어 올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내 몸무게 정도는 들어 올릴 수 있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취업 스트레스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아마도 이걸로 추정) 체중이 재작년 80kg에서 빠지고 빠져 지금 64킬로가 되었다. 누군가는 축하할 일로 생각되겠지만 자가 진단한 건강상태는 그리 못 되는 듯하다. 체력은 저하되고, 무기력에 의욕상실이니 살이 빠지며 활력이 넘친다는 말은 나에겐 맞지 않다. 이러다 해골만 남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특히 허벅지가 심하게 빠졌다는 점이 충격이다. 축구인의 자존심이 허벅지인데 이제는 삐쩍 마른 막대기 같아 보였다. 종아리인지 허벅지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진 허벅지를 원상 복구하기 위해 친구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공짜 헬스장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운동시간은 특별히 정해놓진 않았다. 친구에 말에 따르면 자기가 해보니 운동시간을 정해놓으면 귀찮아지니 시간 날 때마다 들러 10분이든 15분이든 운동을 하고 오라는 것이다.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입주 초 아내와 퇴근 후 정기적으로 들르자고 결의했건만 3번인가 하고 지금껏 들르지 않은걸 보면 우린 결심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다.


  헬스장의 대부분 운동기구는 자신의 능력에 맞게 무게를 걸어놓고, 걸어놓은 무게만큼을 들어 올리게 되어 있다. 친구의 말을 생각하며 아직은 무리지만 모든 운동기구에 내 체중을 걸어 놓으려 한다. 어깨, 등, 이두, 삼두, 하체 모든 부위가 내 체중을 너끈이 견디게 하고 싶어 졌다. 세상에 태어나 내 한 몸쯤은 남의 도움 없이도 견뎌내야 할 것이 아닌가.


  매일 오후 4시경 여유 있게 헬스장에 들러 내 무게를 견디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근육을 키워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유보다 내 무게를 충분히 견딜 수 있게 만들고 싶은 이유가 더 크다. 예전부터 축구만 좋아해서인지 상체가 하체보다 부실했다. 몇 년 전 상체 좀 키워보려 방문 틀에 매달아 놓은 간이 철봉에 영혼까지 끌어모아 몸을 비틀어 올리는 턱걸이를 하며, 내 몸무게 따위를 들어 올리는 것이 이리도 힘든 것인지에 대한 자괴감이 있었다. 만일 집에 불이 나서 집 밖 창문틀에 매달려 있어야 할 때를 생각하며, 히말라야 등산을 갔다가 조난을 당해 절벽에 매달려 있을 경우를 생각하며(실제로 이런 꿈을 종종 꾼다) 생존이 곧 내 무게를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분발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무게를 견딘다는 것은 누구의 도움 없이도,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실직의 상황에서 나름의 알바로 가사에 보태고,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으며 두 번째 도약을 준비하지만 여전히 현재와 미래의 무게가 버겁다. 지금으로서는 아내가 내가 들어 올려야 하는 무게까지 지고 있음에 더할 나위 없는 미안함을 느낀다. 내 무게 정도는 내가 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이제 숨어있는 잔근육을 키울 때가 왔다. 모든 무게의 추를 내 체중에 맞추고 1세트에 15-20회를 거뜬히 할 수 있도록 내 무게를 들어 올리려 한다. 허벅지는 물론이요 특히 부실한 상체를 끌어올려 어깨 깡패가 되어 아내를 어깨에 매달고 집안 한 바퀴 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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